등록 : 2009.02.18 18:31
수정 : 2009.02.1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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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커피를 마신다. 크룹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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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KRUPS와 함께하는 커피 사연 공모전
커피를 즐기는 악마(!) 밑에서 새벽 호출을 당하며 일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남들이 웃으면서 볼 때 난 연민과 공포로 부들부들 떨며 봤다. 그녀와 지낸 반년 남짓한 시간은 악몽이었다. 아침마다 6시까지 출근해 사무실로 배달되는 일간지를 모조리 읽은 후, 그녀가 읽을 페이지에 표시를 해 그녀 책상에 올려두는 것으로 일과가 시작된다. 그녀는 매일 아침 7시59분이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로 공포감을 조성한 다음 정각 8시에 자리에 앉곤 했다. 그녀가 아무 말 없이 신문을 읽기 시작하면 무사히 첫 관문을 통과한 셈이다. 두 번째 난관은 커피였다. 그녀는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커피의 적정 온도를 따졌다. 그녀가 신문을 펴든 후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마시고 내뱉는 첫마디를, 나는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녀는 특별한 경우에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그때마다 매혹적인 향에 한 모금 마셔보고 싶은 기분이 들곤 했다. 하지만, 딱 한 번 맛본 후엔 다시는 그 악마의 음료를 넘보지 않았다.
어느 날 야근을 마치고 돌아와 침대에 지친 몸을 던지던 찰나, 살벌한 휴대전화 기계음이 울렸다. 그녀의 호출이었다. “내일은 아메리카노가 아닌 에스프레소를 준비할 것!” 순간, 알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혀 몇 달 동안 상상 속에서만 계획하던 일을 실천하고자 마음먹었다. 그녀의 커피에 약을 타는 것이다. 설사약을!
다음날 아침 나는 에스프레소 잔에 약을 넣지도 못하고 약병을 잡고 덜덜 떨고 있었다. 순간 그녀의 하이힐 소리가 울리고 나도 모르게 놀라 약을 부어버렸다. 그녀는 사무실에 들어오며 “시간을 잘 맞췄군, 고마워!”라며 컵을 낚아챘다.
그녀는 문제의 커피를 마시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나랑 일한 지 아마 반년 정도 됐지? 오늘 오후에 중대한 사항에 대해 임원진 앞에서 발표를 할 거야. 제안서 10부 카피 준비해줘. 그 후에 당신 커리어와 앞으로 새로 맡게 될 일에 대해 얘기해 보자구.”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해 그렇게 후회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결국, 그녀의 인정을 받은 마당에 나는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그녀에게 설사약을 먹인 것이었다! 결국, 그녀는 5분마다 화장실을 들락거리긴 했지만, 다행히 하얗게 변한 얼굴을 하고서도 식은땀을 손수건으로 찍어가면서 발표를 무사히 마쳤다.
정직원이 되고, 내 업무를 담당할 인턴을 새로 뽑았다. 그 후 내가 그 인턴에게 어떤 선배가 되었는지, 그녀 밑에서 얼마간 더 일했는지는 비밀로 부친다. 그 후로도 나는 에스프레소를 즐겨보겠노라 여러 번 다짐했지만, 여전히 악마의 음료를 마시기엔 역부족이다.
김수정/서울 서대문구 연희3동 대림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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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UPS와 함께하는 커피 사연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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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c〉가 독일 명품 소형가전 크룹스와 커피 사연 공모전을 진행합니다. `당신의 기억 속에 커피가 가장 맛있던 순간·에피소드’를 주제로 200자 원고지 6장 안팎의 사연을 보내 주세요. 한겨레 누리집(www.hani.co.kr)에 접속해 esc를 클릭한 뒤 커피 사연 공모란에 응모하시면, 매주 한분을 뽑아 크룹스 반자동 에스프레소 머신 엑스피4050과 원두분쇄기 산타페(50만원 상당)를 드립니다. 문의: (02)710-0335, (02)2193-0655(상품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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