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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2.18 18:39 수정 : 2009.02.18 19:29

김완선. 한겨레 자료사진

[매거진 esc] 나지언의 싱글 라이프





올봄에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되는 사람은 이제 커스틴 던스트와 린지 로한의 파파라치 룩을 클릭할 게 아니라, 옛날 비디오 가게를 뒤져 1980년대 영화 <조찬 클럽>과 <리치몬드 연애 소동>을 찾아내야 할 것 같다. 혹은 버리지 않았길 바라며 엄마의 장롱을 다시 뒤지든지. 80년대 룩이 올봄의 유행 키워드라는 소식은 듀란듀란의 해체 소식보다 더 충격적이고 절망적이다. 도대체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지만 디자이너들은 가장 과장되었고 촌스러웠다고 평가받는 1980년대 패션을 ‘트렌드’의 중심으로 불러들이길 멈추지 않고 있다.

나에게는 최재성 바지라고밖에 기억되지 않는 스노진(일명 ‘돌청바지’)은, 크리스토프 드카르냉이 이끄는 발맹(Balmain)의 2009 에스에스(s/s) 컬렉션에서 보란 듯이 등장했다. 징 장식이 가득 달린 재킷은 김완선(사진)이 입었던 옷처럼 어깨가 지나치게 크지만 패션 피플들은 열광했다. 지금 뉴욕에서 가장 주목받는 디자이너라는 알렉산더 왕은 가죽과 데님을 덧붙인 셔츠와 과장된 어깨를 자랑하는 청남방(데님 셔츠라는 말보다 이 단어가 더 어울린다)을 선보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 우아한 지방시마저도 청조끼를 내놓았다. 형광 살구색과 분홍색을 매치하질 않나, 스노진에 데님 셔츠, 그리고 그 위에 데님 조끼까지 매치하는 끔찍한 롤라장 룩을 선보이질 않나. 맙소사, ‘톱샵 유니크’ 컬렉션에는 스카프로도 모자라 머리에 리본을 단 모델들이 등장했다.

여기까지 읽고 80년대에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추측하는 사람들이 있을 줄 안다. 20년대나 60년대 룩이 유행의 중심에 섰을 때는, 사실 이렇게까지 분노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80년대는 다르다. 한쪽으로 치워놓은 머리 모양과 우스꽝스러운 디스코바지, 과장된 액세서리, 힘겨루기 하듯 경쟁적으로 넣었던 어깨의 패드(일명 ‘뽕’), 비비화 등에 대한 기억이 나에겐 촌스러운 과거 사진으로 남아 있다. 이제 겨우 그 죄의식 가득한 패션을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나보고 그 옷을 입으라고?

나지언의 싱글 라이프
이제 결정해야 한다. 창피해 죽을 것 같은 80년대 패션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옷들을 입으면서 트라우마를 극복할 것인가? 혹은 트렌드를 외면하면서 여전히 회색과 검은색으로 온몸을 휘감은 채 단조롭기 그지없는 미니멀리즘을 고수할 것인가? 유행은 언제나 대나무 같은 나의 줏대와 고집을 꺾어버리는 힘이 있었다. 혼자 스트레이트 바지를 고수하는 게 촌스러워 보여 유행의 끝물에 그렇게도 입기 싫어했던 스키니진을 사지 않았던가. 옛날 사진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긍정적인 생각도 잠시, 또다른 의문이 생겨났다. 과연 2030년에는 지금 입는 80년대 룩을 촌스러워하지 않을까?

나지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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