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의 궁전들
|
[매거진 esc] 오기사의 도시와 건축
안도 다다오라는 일본의 유명한 건축가가 있다. 그의 건축은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한 절제된 형태로 대표된다. 덕분에 사진을 찍으면 제법 근사하게 나온다. 10여년 전 잡지에서 그 사진을 보고 직접 보고 싶은 마음에 일본을 찾았던 적이 있다. 당시 그의 대표작은 빛의 교회, 바람의 교회, 물의 교회 등이었다. 일본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지만 기독교와는 좀 거리가 먼 사회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교회가 그의 대표 건축이라 해 조금 의아했다. 오사카 근처의 작은 마을에 있던, 예배라고는 일요일에 딱 한 번 있는 빛의 교회를 답사했을 때까지만 해도 잘 몰랐다. 그다음 일정으로 고베 근처의 바람의 교회에 답사를 갔을 때는 마침 토요일이었다. 마흔 석 정도의 좌석이 있는 작은 교회에서 작은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게다가 교회는 호텔의 부속 건물이었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일본의 교회는 전문 결혼식장이었던 것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동양 사회는 알게 모르게 서양 문화를 이것저것 받아들였다. 일본 역시 근사해 보이는 것들을 자기들 것으로 만들었는데 교회에서 결혼식 전문 목사의 진행으로 혼례를 치르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서양의 성당을 본뜬 작은 교회당도 있고, 안도 다다오의 것처럼 새로운 건축언어로 지어낸 교회도 있다. 물론 기독교 신자가 들으면 뜨악할 이야기겠지만 어쨌든 이런 문화가 내게는 무척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사실 일본인들에게 감동했다. 서양의 것을 받아들일 때 일본식으로 개조했다는 점, 그리고 그 개조의 과정에서 세계적인 건축가 한 명이 탄생했다는 사실이 그랬다. 언제부턴가 한국의 웨딩홀 중 일부도 서양의 궁전이나 성을 본뜨기 시작했다. 자기비하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실 그 웨딩홀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편하지 않다. 서양 것에 대한 맹목적인 지향이야 일본도 다를 바 없지만 결과물로 보자면 수준이 한참 떨어지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하다못해 롯데월드처럼 아예 서양의 궁전 모양으로 똑같이 베꼈다면 그런가 보다 했을 것 같다. 문제는 상자 형태 건물 위에 돌을 가져다 붙여놓기만 했다는 점이다. 비례가 전혀 다른 바탕 위에 장식을 하다 보니 전체적으로 우스꽝스러워진다. 결혼을 아직 해보지 못한 나는 예비부부들이 결혼식장을 고르는 선택 기준이 궁금하다. 겉모습을 서양의 궁전 식으로 꾸며놓은 곳에서 결혼식을 하면 정말 왕자·공주라도 될 것 같은 기대감이 생기는 것인지, 아니면 대부분의 결혼식장이 다 그런 형태를 띠고 있어 할 수 없이 그곳에서 하는 것인지 말이다. 어떤 이유가 됐든 축복의 정점에 있어야 할 결혼식 장소가 제대로 베끼지도 못한 건물이라는 사실이 조금 슬픈 건 사실이다. 오영욱/건축가·오기사디자인 대표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