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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3.04 18:30 수정 : 2009.03.04 19:22

나지언의 싱글 라이프

[매거진 esc] 나지언의 싱글 라이프

“너란 아이를 만나게 돼서 다행이야”나 “넌 나에게 얼룩 같은 존재야”를 제치고 요즘 싱글 여성들 사이에서 제일 유행어가 될 조짐이 보이는 문장이 있다. 그동안 우리는 이 문장을 쓰지 않기 위해 이런 식으로 돌려 말해 왔다. “그 남자가 암에 걸린 거 아닐까?” “기억상실증에 걸렸을지도.” “관계를 천천히 발전시키고 싶어하는 남자야.” “수줍음이 많고 날 어려워해서 그래.” 하지만 알 거다. 그래서 전화했더니 안 받더라는 사실. 말도 잘 통하고 분위기도 좋았고 집에 바래다주기까지 했는데도 소개팅한 남자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는 건 위와 같은 이유들 때문은 아니었던 거다. 그는 죽지 않았다. 버젓이 살아서 다른 여자와 데이트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이 한 문장이면 됐다.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영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의 줄거리만 읽고도 여자친구들과 나는 분노했다. 어쩜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영화가 개봉하게 된 거지? 이제 사람 사이의 예의라는 건 없나봐. 동명의 책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우리에게 친구들의 연애 상담을 할 때 말을 돌리지 말 것을 재촉했다. 좋아한다면서 막상 연락하면 귀찮아하는 듯한 모호한 태도의 남자, 여자라곤 나밖에 없다는 말과 달리 넘어가면 적에게 사살되기라도 하는지 절대 친구의 선을 넘어가지 않는 남자들에 대한 결론은 언제나 저 문장이었다. 이 세상에서 전화 한 통 못 걸 정도로 바쁜 남자는 없으며, 마음에 드는데도 첫사랑에 대한 아픈 추억 때문에 모호하게 행동하는 남자는 없다는 진리를 이제야 우리는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는 걸 24시간 내내 증명하려고 애쓰는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와, 흡혈욕구를 억제하면서까지 인간과 연애하는 <트와일라잇>의 뱀파이어 에드워드에게 마음을 주는 건지도 모른다. 무릎 튀어나온 ‘추리닝’ 입고 바보 같은 웃음을 흘리며 티브이 앞에 앉은 우리들을 보고도 부모님들은 말하셨다. “그 남자가 눈이 삐었나 보다. 어떻게 우리 딸 같은 애를 마다한대니?” 하지만 이제 부모님들에게도 솔직해지시라고 말해야 할 때다. 나보다 괜찮은 다른 집 딸들이 이 세상엔 아주 많다는 것을 말이다.

나지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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