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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3.04 19:48 수정 : 2009.03.04 19:48

대규모 빨래터인 뭄바이의 도비가트. 이곳에선 빨래가 풍경이 된다.

[매거진 esc] 노중훈의 여행지 소문과 진실

여행을 떠나기 전 들려오는 사전 정보들 속에는 허위, 과장, 편견, 오해가 들끓는다. 아스팔트를 녹여낼 기세로 내리쪼이는 한여름 햇볕처럼 왜곡된 정보가 자글거리고, 길 떠날 채비를 하는 사람의 마음은 하릴없이 어수선, 산란해진다. 풍문으로 귀에 걸린 정보와 현지에서 눈으로 확인하는 현실 사이에는 괴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여행은 거짓말 탐지기다. 물론 거짓말 탐지기는 완벽하지 않다. 여행자의 고정관념과 취사선택을 통과하면서 또다른 오류의 진원지가 될 수도 있다. 그래도 검증의 과정을 거친다는 점은 여행이 지닌 미덕이 아닐 수 없다.

지난달 하순 인도를 이틀 상관으로 연달아 두 번이나 방문할 일이 생겼는데,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지난해 11월27일 발생한 뭄바이(Mumbai) 폭탄 테러가 여전히 똬리를 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출장 지역 가운데 한 곳은 뭄바이가 아닌 델리(Delhi)였지만 실시간으로 생중계됐던 뭄바이발 ‘충격과 공포’는 그들의 머릿속에서 이미 인도 전역으로 확장돼 있었다. 테러가 일어난 지 3개월이 지난 인도의 경제 수도 뭄바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단단한 일상 속에서 분주했다. 주말 밤, 해안가인 마린 드라이브 주변을 가득 메운 끝없는 사람들의 물결에서는 아연 생의 기운이 느껴졌다. 당시 폭탄이 터졌던 타지마할 호텔은 3주 만에 영업을 재개했다. 거칠게 말하자면 테러 이전과 이후 달라진 것은 유명 호텔을 중심으로 보안 검사가 강화됐다는 사실뿐이었다.

뭄바이에 세간의 이목이 다시 쏠린 것은 지난달 22일 제81회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해 8개 부문을 거두어 간 다음부터다. 세계 최대의 빈민가인 뭄바이의 다라비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이슈의 중심에 서자 그 열악한 환경에 혀를 차는 사람이 많아진 모양이다. 그러나 인도 현지인들은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는다. 서구의 일방적인 시선이 오롯한 영화가 왜곡된 인상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사실 땅값과 집값이 하늘에 걸려 있는 뭄바이에서는 40퍼센트가량의 사람들이 슬럼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또다른 40퍼센트도 베란다를 공유하는 허름한 공동 주택에서 기거한다. 집 없이 산다고, 슬럼을 집터와 일터로 삼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걸인이거나 절대적으로 빈곤한 것은 아니다.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부동산 가격 때문에 자신들의 수입으로는 빈민촌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뿐이다.

노중훈의 여행지 소문과 진실
도비가트는 ‘뭄바이의 빨래터’다. 우리 속담에 ‘빨래 이웃은 안 한다’는 말이 있지만 이곳은 1천여명이 동시다발로 빨래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일평생 빨랫감을 내리치고, 헹구고, 너는 일만을 해야 하는 카스트인 도비왈라는 뭄바이에만 5천여명이 있다. 하루 평균 200장 정도를 ‘손세탁’하며, 월평균 10만원을 벌어들인다. 이들의 삶도 모지락스럽게 보일 테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으며, 그들이 삶의 조건이 넉넉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관광객의 순간으로 이들의 일상을 함부로 규정하거나 조롱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것이다.

노중훈 여행작가 superwin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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