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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3.11 20:52 수정 : 2009.03.11 20:52

삼성타운 vs 윤빌딩

[매거진 esc] 오기사의 도시와 건축

옥에 티인가? 티에 옥인가?

오랜만에 서울 강남역 일대에 놀러 간 사람이라면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짧은 시간 동안에 변해도 너무 변했기 때문이다. 이제 강남역은 단지 젊은 사람들이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 동네가 아니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삼성 계열사들이 모여 있는 서초 삼성타운이 있다. 미국의 건축사무소 케이피에프(KPF)에서 기본설계를 하고 우리나라의 삼우설계에서 실시설계를 진행한 이 거대한 건물은 언뜻 서울에서 떨어져 나온 새로운 세계처럼 보인다. 근처에 새로 건축된 높은 건물들이 많지만 이 건물엔 상대가 되지 않는다. 가장 먼저 눈에 띄고 각인되기 때문이다. 서초 삼성타운을 바라보면 제법 미래의 건축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가까이 가 보면 모든 것은 이내 현실로 돌아온다. 새롭게 지어진 세 건물 사이에 삐죽 솟아 있는 6층짜리 작은 건물(윤빌딩) 때문이다. 새로운 세계와 미래의 건축에 대한 생각을 조롱하듯 이 건물을 에워싼 낡은 재료와 더덕더덕 붙어 있는 간판들은 이곳이 2009년의 서울임을 각인시켜 준다. 사실 고만고만하게 비슷한 크기로 지어진 주변 상가의 건물들과 비교하면 윤빌딩은 정갈한 편이다. 세심하게 관리한 흔적이 보인다. 다만 너무 매끈한 건물들 사이에 존재한다는 점이 지금처럼 이 건물을 어색하게 튀어 보이게 만드는 이유다.

오기사의 도시와 건축
서초 삼성타운과 윤빌딩, 이 두 건물에 대한 이야기가 민감한 사항일지도 모르겠다. 당사자들 간에 존재했던 수많은 갈등들이 지금에 이르렀겠지만 그 자세한 내막이야 알 수 없다.(인터넷으로 기사를 검색하면 내막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다만 제3자가 볼 땐 어쩐지 단막 코미디극 한 편을 보는 것 같다. 극단적인 두 형태의 건물은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아직도 서로 삐친 채 아무 말도 안 하면서 지내고 있는, 마치 한집에 사는 이혼한 부부처럼 보인다.

세상에는 분명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할 것이다. 깔끔한 도시를 원하는 이들에게 저 작은 건물은 옥에 티가 될 것이다. 반대로 과거를 무시하는 대규모 개발에 반감을 가진 이들에겐 윤빌딩은 ‘티에 옥’(?)일 수 있을 것도 같다. 개인적으로는 어느 쪽 편도 들고 싶지 않다. 모든 것이 번듯한 도시는 좀 재미가 없다. 이건 대규모 재개발에 맞선 영세 철거민의 처지를 둘러싼 문제도 아니다. 물론 모두 각자의 사연이 있다. 두 건물의 위태로운 동거가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사실 지금의 긴장관계가 재미있다고 느껴지기는 한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조금은 궁금하다. 아, 나는 이 도시에 대해 관음증이 있나 보다.

오영욱/건축가·오기사디자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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