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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3.11 21:04 수정 : 2009.03.11 21:04

후카사와 나오토와 재스퍼 모리슨이 기획한 <슈퍼노멀> 전시회 모습. 안그라픽스 제공

[매거진 esc]

화려한 색 지우고 돌아오는 백색가전과 단순한 제품들…디자인 과잉 시대 반발 의미도

평범함의 귀환. ‘이 디자인 너무 평범한데~’(supernormal)라는 말을 이제는 따분하다거나 뒤처졌다는 뜻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특별함(super)과 평범함(normal)을 합쳐놓은 이 아이러니한 단어는 오늘날 세계 디자인의 흐름을 농축해 보여주는 강력한 열쇳말이 됐다. 도대체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디자인이 상호모순 없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디자인 전쟁 시대에 새로운 열쇳말로 등극

전세계 유수 기업들의 제품을 디자인했던 디자이너 재스퍼 모리슨과 후카사와 나오토는 2006~2007년 도쿄와 런던에서 병따개, 전자계산기, 재떨이, 자전거, 물통, 쓰레기통 등 너무도 평범한 200여 가지 제품을 모아 ‘슈퍼노멀’이란 이름의 전시회를 열었다. 후카사와는 “평범함은 사람과 환경, 생활양식이 따로 노는 디자인에 대한 반발”이라며 눈에 띄려는 목적만을 염두에 둔 디자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슈퍼노멀’이란 열쇳말은 디자인에 대한 하나의 선언이자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국내에서도 지난달 말 ‘슈퍼노멀’의 사례와 개념을 설명하는 동명의 책이 안그라픽스에서 번역 출간됐다.

일본 생활용품 브랜드 `무지'는 사물의 기능을 돋보이게 하는 디자인을 추구한다. 사진 박미향 기자

‘슈퍼노멀’은 요즘 같은 디자인 과잉의 시대, 기존 디자인에 대한 반발의 의미도 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물을 다시 보게 하는 것뿐 아니라, 물질문화에서 소비에 몰입하는 생활패턴에 대한 반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즉 뭔가 ‘있어 보이는’ 자극적이고 강렬한 것들을 완성하는 데 혈안이 되었던 지금의 스펙터클한 디자인 트렌드를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실제로 장식을 극도로 삭제해 본래의 형태만을 남기는 평범한 디자인은 최근 문구류, 인테리어, 전자제품 등을 막론하고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디자인 평론가 이재희씨는 “슈퍼노멀은 기명과 익명의 디자인을 중첩시킨다”고 말한다. ‘이름있는’ 디자이너의 손길과, ‘이름없는’, 또는 디자이너의 이름이 중요치 않은 평범하고 단순한 스타일이 하나의 제품 안에 녹아들어간다는 뜻이다. 일례로 일본 생활용품 의류브랜드인 ‘무지’는 장식적인 기교를 삭제해 마치 디자인을 안 한 듯한 건조한 디자인으로 이름높다. 무늬 없는 침대, 액세서리, 튀지 않는 인테리어 제품은 ‘개성이나 유행을 상품화하지 않는다’는 역발상을 전제로 한다. 세계적 문구 브랜드 ‘몰스킨’, 가방 브랜드 ‘렉슨’, 인테리어 소품 브랜드 ‘알레시’, 가구 브랜드 ‘이케아’ 등은 모두 과도한 디자인을 덜어낸 군더더기 없는 단순한 일상용품을 보여준다.

왼쪽부터 장식적인 기교를 벗어던진 ‘무지’의 계산기(무지 제공). ‘무지’의 소프트 슬리퍼(무지 제공). 엘지전자의 ‘보보스 피디피(PDP)’. 간결함을 내세웠다(엘지전자 제공). 엘지전자의 신제품 김치냉장고. 함연주 작가의 작품에 단순함을 강조한 2009년형 디자인을 적용했다(엘지전자 제공). 미니멀 디자인이 돋보이는 엘지전자의 ‘2009 휘센 디럭스 아트 디아이와이(DIY) 모델’(엘지전자 제공)

사각의 티브이, 흰색 냉장고

과장된 디자인을 피하는 것은 최첨단 기능을 보여줘야 하는 전자제품 디자인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근래엔 화려했던 무늬와 강렬한 컬러가 사라지고 민무늬 하얀색이 강조되는 ‘백색가전’이 각광받는다. 엘지전자 ‘휘센 라이프 컨디셔너’나 ‘2009년형 디오스 냉장고’도 디자인 콘셉트나 기능을 뒤로 숨긴 절제된 디자인을 내세웠다. 엘지전자의 최준혁 과장은 “근래 소비자들은 액세서리나 버튼 등을 통해 과시적인 형태의 제품들보다 미니멀한 디자인을 찾는다”며 “피디피 티브이도 치장 없이 사각형의 화면 형태를 전면에 내세우는 절제된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과장된 디자인에 지친 사람들에게 이제 ‘디자인의 평범함’은 하나의 발견이다. ‘슈퍼노멀’은 이렇게 사물과 사람이 교감할 수 있는 디자인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후카사와 나오토와 재스퍼 모리슨이 프로젝트를 통해 찾아낸 ‘슈퍼노멀’ 디자인의 사례에서도 극도의 평범함을 통해 일상에 녹아든 비범함을 발견할 수 있다.

슈퍼노멀 디자인

쇼핑바구니
1. 쇼핑바구니

흔히 볼 수 있는 너무도 평범한 바구니다. 온갖 화려한 가방에 밀려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이 쇼핑 바구니는 플라스팅 주형 물건치고는 기능면에서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원래 대나무를 엮거나 털실을 짜서 만들었던 사물을 모방한 것인데, 원조를 능가하는 기능적으로 훌륭한 ‘노멀’ 디자인으로 자리매김했다. 바구니에 난 구멍은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해 사용자의 손을 다치게 할 수 있는 모나고 까칠한 부분을 사전에 방지한다.


펠트 속버선
2. 펠트 속버선

보온 양말처럼 고무 부츠 안에 신도록 만들어진 버선으로 군더더기 없이 신체의 발 모양을 그대로 본떴다. ‘슈퍼노멀’ 디자인의 본질로 꼽힌 속버선. 펠트 시트라는 판판한 소재를 사용한 디자인으로 “모든 신발의 역사를 대변” 한다.


우유병
3. 우유병

‘슈퍼노멀’ 전시의 기획자들은 이 유리병을 앞에 두고 이렇게 질문한다. “신문처럼 아침 문 앞에 배달되던 유리병 모양, 왜 여태 변하지 않고 그대로일까?” 디자인의 힘은 빈 병만 봐도 달콤한 우유 맛을 떠올리게 한다. 우유를 담기에 가장 “적합하고 평범한 형태”를 띠고 있다. 유리를 두껍게 가공해 쉽게 깨지지 않는 튼튼한 디자인이다. 멋 내지 않았으되, 일상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강력한 병으로 세계 많은 곳에서 만날 수 있다.


짐 운반 손잡이
4. 짐 운반 손잡이

무거운 짐을 들 때 없어서는 안 될 손잡이. 단순해 보이는 손잡이지만, 무게 있는 비닐봉지를 오래 들어본 사람이라면 손이 얼마나 아팠는지 기억할 것이다. 짐 운반 손잡이는 “특징 없는 형태에 극도로 미니멀한” 디자인으로 우리가 물건을 제대로 들 수 있게 돕는다. 최소한의 재료를 사용해 간결하면서도 가장 손에 잡기 쉬운 손잡이가 이렇게 탄생해 널리 쓰인다.

글 현시원 기자 qq@hani.co.kr·참고 〈Super Normal, 평범함 속에 숨겨진 감동 슈퍼노멀〉(안그라픽스, 후카사와 나오토/재스퍼 모리슨 지음, 박영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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