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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칼 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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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너는 내운명
기자의 펜은 종종 칼로 비유된다. 검사를 흉내내 ‘거악을 척결한다’는 말을 쓰던 선배 기자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거악도 사람 모습을 하고 있다. 내 눈앞의 누군가를 기사로 ‘베는’ 것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무능한 기자라 그런 경험이 적었지만, 그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대신 ‘기자는’이라는 주어를 쓰는 3인칭 시점의 기사체는 그 칼을 휘두르게 해 주는 방패였다. 가끔 그 객관성의 방패는 구보하는 병사가 쓴 방독면처럼 나를 숨차게 만들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필요한 게 곧 옳은 것은 아니다”라는 조지 오웰의 말에 동의하기 시작한 것은. 누군가를 베는 대신 내가 쓴 자음과 모음이 아이를 배부르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가끔 생각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다. 김신(37)(사진) 요리사를 부러워한 이유가 여기 있다. 요리사의 칼은 피 흘리게 하는 대신 배부르게 한다. 5일 만난 김신 요리사는 자신의 운명을 상징하는 도구로 칼을 꺼내 왔다. “요리를 하다 보면 여러 가지 도구를 사게 되죠. 하지만, 그중에서 몸의 일부처럼 항상 지참하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선반 위에 놓고 고이 모셔 두는 것도 있습니다.” 그가 옅은 갈색의 색이 바랜 나무가방을 열자 프랑스 사바티에 나이프(Sabatier knife) 3종 세트의 스테인리스 칼날이 빛났다. 초록색 코끼리 모양의 상아 손잡이가 달려 있다. 손잡이에 예전 소유자의 이니셜이 음각 돼 있다. 김신 요리사의 미국 시절 이름인 션 김의 에스·케이(S·K)가 아니라 엠·피(M·P)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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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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