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3.11 21:15
수정 : 2009.03.11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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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특제 라떼. 크룹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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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KRUPS와 함께하는 커피 사연 공모전
요즘처럼 추운 어느 겨울날 고3인 저는 수능시험을 마치고 대학교별 시험 준비를 하느라 동네 독서실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제일 조용한 곳은 독서실 5층. 그 뒷문으로 나오면 옥상으로 오르는 계단 복도에 자판기 하나가 있었고, 전 늘 자판기에서 블랙커피 한 잔과 우유 한 잔을 뽑아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조심스레 이 컵에서 저 컵으로 커피와 우유를 따르면 결국 저만의 근사한 특제 라떼가 탄생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마시는 그 커피 맛은 일품이었습니다.
어느 날 옥상에서 커피를 섞고 있는데 뒤에서, “너 뭐 하냐?”라는 소리에 놀라 컵을 떨어뜨릴 뻔했습니다. 돌아보니, 바로 그 ‘오빠’였습니다. 제가 5층 창가 쪽에 앉은 이유는 그곳이 조용하고 뒷문 자판기와 옥상에 가깝기도 해서였지만, 더 큰 이유는 사실 제 오른쪽 대각선으로 보이는 그 ㄱ오빠 때문이었습니다.
그 오빠가 말을 건 거였습니다. 저도 모르게 “일단 마셔봐요 …”라며 저만의 특제 라떼를 내밀었습니다. 그는 의심쩍은 눈빛으로 보더니 한 모금 마시며 “어 …!” 한 뒤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제가 “맛있죠?”라고 물으니, 그는 “느끼해!”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렇게 벽이 허물어진 후 우린 때때로 특제 라떼를 함께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고 달콤한 커피를 마신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전 대학에 낙방했고 그 후 독서실에 다시 가지 않았습니다.
이듬해 대학에 진학했고, 대학 졸업 뒤 선을 봤습니다. 호텔 커피숍에 들어가 “아무개씨를 찾습니다”라고 얘기했습니다. 종업원이 이름을 써서 종을 흔들며 돌아다녔습니다. 한 남자가 일어서서 뒤를 돌아봤습니다. 헉! 그 ㄱ오빠였습니다. 그는 무표정하게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ㄴ양이신가요?”라고 묻는 그에게 쭈뼛거리며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러 왔습니다. 그가 나를 보며 “제가 대신 주문을 해도 될까요?”라고 물었고,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는 종업원을 보며 “블랙커피 한 잔과 우유 한 잔 부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난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혹시 저 알아보신 거예요?”라고 물었고, 그는 몇 년 전의 그때처럼 환하게 웃었습니다. “태어나서 제일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 준 사람을 잊을 수 있나요?” 그는 내게 말했고,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신랑은 막 편의점에 우유를 사러 갔습니다.
도원경/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미성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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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UPS와 함께하는 커피 사연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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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c〉가 독일 명품 소형가전 크룹스와 커피 사연 공모전을 진행합니다. `당신의 기억 속에 커피가 가장 맛있던 순간·에피소드’를 주제로 200자 원고지 6장 안팎의 사연을 보내 주세요. 한겨레 누리집(www.hani.co.kr)에 접속해 esc를 클릭한 뒤 커피 사연 공모란에 응모하시면, 매주 한분을 뽑아 크룹스 반자동 에스프레소 머신 엑스피4050과 원두분쇄기 산타페(50만원 상당)를 드립니다. 문의 : (02)710-0335, (02)2193-0655(상품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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