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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섭(61)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달 4일 전북대에서 인수(人獸)공통전염병연구소 설립에 기여한 공로로 명예 수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있다. 전주/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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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쏙]
‘명예학위’ 총 4000여개 육박수의학·공학 등 분야도 안가려
DJ, 16개 보유 역대 최다기록 올해 졸업철에도 각종 학위모와 꽃다발 물결 속에 많은 정치인들이 명예박사 감투를 얹었다. 한나라당의 강재섭 전 대표(2월4일 전북대 수의학), 이종혁 의원(20일 한국산업기술대 공학), 정의화 의원(25일 조선대 정치학), 안경률 의원(25일 부경대 정치학) 등이다. 같은 당 정몽준 최고위원은 지난달 18일 학위 수여식이 총학생회의 반발로 무산되긴 했지만, 머잖아 전남대에서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받을 예정이다. 앞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지난해 11월 부경대에서 명예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들에게는 주로 학교 발전이나 지역화합, 민주화 기여 등이 학위 수여 이유로 붙는다. ‘명박 남발’, ‘학위 장사’라는 비판 속에도 정치인들의 명예박사 행진이 끊이지 않는 것은, 정치인과 학교 쪽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정치인으로서는 명예박사가 된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 경륜과 능력을 인정받는 의미가 있고, 득표와 연결되는 ‘동문’을 확장하는 실리도 챙길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서울시장 시절인 2005년 목포대로부터 명예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목포대 동문회 행사에 참석하는 등 대선 행보에 적극 활용했다.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명예박사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거물’이 됐다는 의미이고, 취약 지역에 정치적 발판을 마련하는 효과도 있기 때문에 그걸 마다할 정치인은 없다”고 말했다.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가 2007년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뒤 세종대에서 명예 환경학박사 학위를 받는 경우처럼, 정치인에게 명예박사 학위 수여는 중요한 정치 행보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학교 쪽에서는 돈 들이지 않고 유력 인사를 후원자로 얻으면서 학교 인지도와 위상, 학생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2007년 6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원광대에서 명예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고 한 연설이 선거법 위반 논란을 일으켰을 때 원광대의 한 교수는 “원광대가 이렇게 언론에 부상하기는 처음”이라며 ‘홍보 효과’에 놀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명예박사 학위를 준 뒤 학교 쪽에서 정치인에게 단과대 신설이나 건물 신축 등에 관한 민원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 의원 보좌관은 말했다. 부경대 기획처의 채영희 부처장은 “박근혜 전 대표나 안경률 의원은 모두 그들이 정치인이어서가 아니라, 연구시설 조성에 도움을 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엄격한 심사를 거쳐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한 것”이라며 “항간에서 ‘장사’니, ‘마케팅’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억울하다”고 해명했다. 어쨌든 이런 ‘윈윈’ 관계 때문인지, 국내 대학들의 연간 명예박사 학위 수여자는 1997년 125명, 2007년 175명, 2008년 184명 등 꾸준히 늘고 있다. 명예박사 학위가 두 개 이상인 사람의 35.3%가 정·관계 인사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최근 들어서는 정치인이 받는 명예박사의 분야도 정치학에서 다른 분야로 넓어지는 경향이 보인다. 서강대 전자공학과 출신인 박근혜 전 대표는 2008년 카이스트에서 명예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강재섭 전 대표는 전북대 부설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 설립 예산 170억원 배정에 힘쓴 공로로 전북대 수의학 명예박사가 됐다. 역대 대통령 중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내외 통틀어 16개의 명예박사 학위를 소지하고 있어, 이 분야 1위다. 한국, 미국, 영국 등에 걸쳐 법학, 인문학, 경제학, 정치학, 교육학 등 분야도 다양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원광대에서 정치학 명예박사를 받은 것을 비롯해 미국, 일본, 프랑스 등에서 정치학, 법학, 철학, 인문학 등 10개의 학위를 받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1998년 한국체대 이학 명예박사를 시작으로 서강대(경영학), 카자흐스탄 국립유라시아대, 몽골국립대(경제학), 목포대(경제학),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 등 모두 6개의 명예박사 학위를 갖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러시아 모스크바대, 알제리 알제대, 원광대에서 3개의 정치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은 각각 외국에서 2개, 1개씩 학위를 받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명예박사 학위 제안을 모두 고사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이나 독일, 프랑스, 일본 등에서는 명예박사 학위 수여가 매우 드물다. 독일 본대학은 2차 대전 이후 4명에게만 명예박사 학위를 줬을 정도다. 교육과학기술부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4월 기준으로 1945년 이후 국내에서 발급된 명예박사 학위가 모두 3681개다. 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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