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3.16 19:26
수정 : 2009.03.16 19:26
[생활2.0]
한의원에는 때 이른 정력 감퇴로 상담을 청하는 환자들이 많다. 정력과 관련해 <동의보감>에서는 ‘사람의 정(精)은 가장 귀하고도 매우 적으니 우리 몸 중에 1되 6홉이 있을 뿐이다. 기가 모여 정이 그득 차고 정이 풍성해야 기가 성해지는 것이므로 정을 쓰기만 하고 비축하지 않으면 정이 고갈됨에 따라 기가 쇠해져 병이 나게 된다’고 했다. 모든 문제는 수입과 지출의 불균형에서 오는 것이므로 우리는 정이 언제 소모되는지를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옛 유머집에 스님이 수도를 하면 음경이 길어진다는 말이 있다. 절제를 통해 축적이 이뤄지는 자연의 원리를 생각해 볼 때 이 우스갯소리 속에는 뼈가 들어 있다. 정은 실제적인 남녀 관계를 통해서만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상상과 흥분만으로도 소모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요즘처럼 성적 자극이 족쇄를 풀고 거리로 또는 안방으로 달려나오는 시대에는 정을 빨리 소모시켜 버릴 위험이 크다.
점점 늘어나는 성인병 또한 운동 부족과 함께 성적 자극의 증가에도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정은 생명력을 유지시키는 근원적 에너지의 ‘고갱이’이다. 이 정이 고갈되면 마치 꺼지기 직전에 더 밝아지는 촛불처럼 과다한 대사활동으로 몸을 태워버리게 되고 그래서 생긴 과도한 노폐물이 고지혈증, 당뇨, 암과 같은 질환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중년 이후에는 겉으로 식욕이 좋고 잘 먹는다고 해서 좋아할 일이 아니다.
아울러 정은 과도한 정신 작용으로도 소모된다. 사업에 실패한 사람의 머리가 몇 달 사이에 하얗게 세어버리는 일이 종종 있다. 옛 의서에 머리카락은 정의 충실도를 나타낸다고 했으니 과도한 정신의 소모는 역시 정을 바닥나게 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옛 수도인들은 정신을 쓰는 것을 극히 절제했고, 어느 정도 쓰고 나면 반드시 명상에 들어 정을 축적했던 것이다.
정은 기를 정미한 형태로 가공해 저장한 것으로 쉽게 만들어지지 않으므로 잘 지키고 양성해야 한다. <주역>의 괘사 맨 처음이 ‘원형이정’(元亨利貞)으로 시작되는데, 이는 곧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만물이 순서 있게 변화해 가는 모습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길이 원형이정이라면 정을 기르는 방법도 이와 같을 것이다. 이에 따르면 낮에는 봄, 여름의 만물처럼 활발한 운동을 하고, 밤에는 가을, 겨울의 만물처럼 고요히 쉬는 것이 곧 양생법이 된다.
지금의 문화는 밤에 쉬는 것을 잊고 또 잃고 있다. 도시의 열기로 달궈져 밤에도 정을 소모하기만 하고 축적하지는 못한다면 머리가 빨리 하얗게 세어버리지 않겠는가? 정이 충분한데도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은 한약으로 쉽게 치료할 수 있지만 정이 고갈되어 가는 사람은 치료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제마도 중병을 다스릴 때는 석가모니처럼 수도를 해야 한다고 일러줬던 것이다. 이때 수도란 산속에 들어가란 말이 아니라 마음을 쉬라는 뜻이다.
김종열/한국한의학연구원 체질의학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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