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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보다 쓰디쓴, 사진/ 크룹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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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KRUPS와 함께하는 커피 사연 공모전
2009년 1월, 나는 커피를 왜 악마의 음료라고 하는지 100% 공감하게 됐다. 대학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만난 한 선배에게 첫눈에 반해 버렸다. 하지만 극도로 소심한 나는 바라만 볼 뿐 선뜻 “밥 한번 먹자” 말할 수 없었다. 다행히, 그 선배는 군 제대 뒤에도 여전히 여자친구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다 선배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 나는 그가 청첩장을 돌리는 일이 없기만을 기도했다. 하지만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을 가로챈 ‘행운녀’는 그를 독점해 사귄 지 어느덧 2년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가 근처에 볼일이 있다며 시간 되면 잠깐 차 마시자고 전화를 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커피숍으로 향했다. 그는 일이 바빠선지 피곤해 보였지만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얼굴로 “오는 5월로 결혼식을 잡았다”고 했다. 하늘이 노래졌다. 내가 지금 마시는 커피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좋아하던 에스프레소가 사약처럼 느껴지고, 나는 간신히 피에로처럼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로부터 며칠 뒤, 한밤중에 선배로부터 호출이 왔다. 여자친구와 문제가 생겼는데 내가 도와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며칠 전 우리가 같이 커피숍에 있는 모습을 누군가 선배의 여자친구에게 말했고 오해가 생겼다는 것이다. “여자친구에게 전화해서 상황 설명을 해줄 수 없겠느냐”고 그는 말했다. 결혼할 그녀와 어떠한 오해도 만들고 싶지 않다는 선배. 그 자존심 강한 사람이 내게 울먹이며 부탁했다. 눈물이 났지만 그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ㄱ선배님 여자친구 분이시죠? 선배님이 제 직장 근처에 오셨다가 결혼 소식 알려주시려 잠깐 들르신 건데, 오해가 있으셨다고요.” 이어 나는 속으로 말했다. ‘나는 갖지 못하는 그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사람을 믿지 못하는 당신이 너무 밉네요… 이제 다시는 선배 아프게 하지 말고, 힘들게 하지도 말고, 오해 없이 예쁘게 사세요….’ 전화를 마치고 꺼이꺼이 울었다. 속상함을 달래기 위해서 마신 에스프레소 한 모금에서 며칠 전 까끌까끌함과는 또 다른 거부할 수 없는 쓴맛이 났다. 순간 지옥같이 까맣게 타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묘한 느낌? 설렘? 카페인 때문이어도 좋았다. 지금 내게 위로가 되는 것은 이 뜨거운 음료 한 잔이 전부니까. 박용건/강남구 삼성동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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