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9.03.25 22:06 수정 : 2009.03.25 22:06

바라나시에서 갠지스는 남북으로 흐르고, 그래서 일출과 일몰은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 된다.

독서광 노동효의 썸플레이스 오쇼 라즈니시의 <틈>과 인도 바라나시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읽어두면 유익한 책으론 어떤 게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현지 정보가 듬뿍 담긴 가이드북을 먼저 꼽겠지만, 만약 같은 질문을 내게 한다면 오쇼 라즈니시의 <틈>을 권하고 싶다. 아, 당신의 여행지는 인도가 아니라고? 그렇다 해도 <틈>을 추천하겠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꼼꼼한 ‘정보’나 빈틈없는 ‘일정’이 아니라 여행을 대하는 ‘자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길을 떠나기 전에 미리 모든 것을 정해 놓아야 안정이 되는 여행자들을 종종 만난다. 그럴 때면 난 그들이 ‘숙제’를 하러 온 것인지, ‘여행’을 하러 온 것인지 어리둥절해진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좀처럼 실수하지 않는다. 그들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대신, 텅 빈 삶을 살아간다. 그들은 존재를 위해 어떤 것도 기여하지 않는다. 이 땅에 와서 무료하게 있다가 죽는 게 그들이 하는 전부이다.”(오쇼 라즈니시의 <틈>)

네팔 룸비니에서 만난 친구들이 인도에 대해 “인크레더블!” “인크레더블!” 소리쳐 대면서 왜 인크레더블인지 묻는 나의 질문엔 대답하지 않는 통에 인크레더블의 실체를 확인이나 해보자는 심보로 인도 여행을 떠났다. 국경에 도착하는 순간, 아치형 간판에 쓰여 있던 글씨 - 인크레더블 인디아. ‘인크레더블’은 ‘다이내믹’ 코리아처럼 국가 슬로건이었던 것이다. 고작 이런 이유로 인크레더블이었다니, 시시하게시리! 그랬는데 바라나시에서 사흘을 보내고 나자 내 입에서도 “인크레더블!”이란 말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 골 때리는 인도!

바라나시의 내 룸메이트 ‘홈워크’는 종일 침대 위에서 엎드려 지냈다, 레스토랑과 호텔 정보를 비교분석하느라고. 그가 가이드북을 분석하고, 분석하고, 분석하는 동안 나는 무작정 갠지스 강변과 거리를 떠돌았다. 그리고 해 질 무렵 숙소로 돌아와 각종 정보를 섭렵한 그를 앞세워 ‘가장 맛있다’는 음식점으로 갔다. 그는 식당에서 만난 여행자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그 레스토랑에 가봤니?” “나도 거기 갔었어!” “그 호텔 가봤니?” “아, 나도 거기서 묵었지!” 대화 내용이란 주로 가이드북에 언급된 장소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는 맞장구들이었다. 나는 그와 인도의 보드가야까지 동행했다. 그는 여행길 내내 ‘이 지역은 도적떼가 출몰한다고 가이드북에 씌어 있다’는 등 수차례 가이드북을 인용해 내 행동을 만류했다. 보드가야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예의 그 숙제(?)를 하며 사흘을 더 보내더니 다른 도시로 떠났다.

그 후 나는 가이드북 한 권 없이 보드가야에서 지냈다. 그와 같이 보낸 여행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모험과 예기치 않은 만남과 느닷없는 웃음이 만발한 축복의 시간이었다. 내일 일은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 오직 ‘알 수 없음’의 자유만이 가득했다. 모든 것이 불안정했지만 불안정을 삶의 실체로 받아들이자 모든 것이 편안했다. 그래, <틈>의 문장들처럼.

노동효 여행작가·<길 위의 칸타빌레> 저자 newcross@paran.com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