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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4.01 19:49 수정 : 2009.04.01 19:49

[매거진 esc] 싸움의 기술

“피디(PD)수첩에 나가고 싶으세요??” 이 말은 무엇인가? 전말은 이렇다. 10년 전 안정된 회사를 박차고 독립영화판에서 영화 만들다가 잠시 월급을 받기 위해 어딘가에 위장취업했던 시절이다. 좋은 시절 다가고 기울 무렵 영화팀이 해체될 위기에 대표의 친구라는 작자가 나타나서 무려 3억원을 투자할 테니 회사를 차리라고 했다. 참고로 그 친구라는 작자는 영화판과 상관없이 돈만 많은 어쩐지 수상쩍은 사람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좋은 제안이! 무엇보다도 내가 아끼는 나의 스태프와 같이 일하고 싶다는 열정에 그 제안을 덜컥 받았다. 회사 이름도 만들었다. 보물섬. 80년대를 풍미했던 만화 월간지 <보물섬>에 대한 나의 애정이 영화사 이름에도 나온 거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회사 이름이 보물섬이 뭐냐? 사회생활 해 봤냐? 거기 출장대기 어쩌고 하는 술집 이름이냐”고 면박을 주는 거다. 뭐여? 하지만 꾹 참고 “그건 술집 이름이 아니고 80년대 풍미했던 만화 월간지 이름이고 그런 역할을 하는 영화사를 만들고 싶어서 그렇다”라고 하니까 뭔가 그럴듯한 영어 이름을 만들라고 한다. ‘은하철도999’라고 할까부다 콱!! 사무실 구하고 책상, 컴퓨터 구하고 스태프들 다 나와서 조촐하게 오픈 고사도 했다.

왜 선투자금이 입금이 안 될까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던 어느 날. 이 투자자란 작자가 나타나서 영화 찍으면 여배우랑 꼭 밥 먹게 해 달라고 하는 거다. 순간 싸해지는 기분. 난 그 순간 “당신 <피디수첩>에 나오고 싶냐?”고 받아쳤고 그 사람은 농담인데 왜 이렇게 반응하냐고 눙을 치면서도 바로 입을 다물었다. 이때 그 사람에게 원색적인 욕을 했거나 멱살잡이보다도 더 효과적인 말은 <피디수첩>에 나오고 싶냐고 말한 거였다. 그렇다. 세상에서 욕보다 더 무서운 것은 미디어의 힘이다. 그 사람은 나의 말에 흠칫거렸고 난 그런 돈과는 화해를 못 했다.

김정영/오퍼스픽쳐스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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