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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4.01 19:53 수정 : 2009.04.01 19:54

나지언 자유기고가

[매거진 esc] 나지언의 싱글 라이프





그러니까 언제부터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평소 옷 잘 입기로 유명한 소피아 코폴라가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사진을 본 후였는지, 회사 동료가 입고 온 꽃무늬 원피스를 본 후였는지. 어느 순간 옷가게를 지나칠 때마다 꽃무늬 원피스를 죄다 훑어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온갖 잡지들에서 올봄 하나의 옷을 사야 한다면 바로 꽃무늬 원피스라고 말한 것까진 좋았는데, 내가 입어도 괜찮을 꽃무늬 원피스가 존재하는진 의문이었다. 내 옷장을 보면 ‘밝은색 옷 금지’라는 경계령이라도 내린 독재 시대의 유물 같으니까 말이다. 거무튀튀하고 단조롭기 그지없는 색과 디자인들. 친구들이 ‘만날 똑같은 옷만 산다’고 뭐라 해도 어쩔 수 없다. 튀는 걸 싫어하고 의상으로 주목 받기 불편해하는 나는 이런 옷 안에서 극도의 편안함을 느껴 왔다.

꽃보다 체면 / 박미향 기자
그날도 결국 내려놓고 나올 걸 알면서 잔꽃무늬 시폰 원피스를 몸에 대봤다. 소비는 언제나 ‘한번 입어나 보자’라는 안일한 생각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냥 봤을 때보다 입어 보니 더 나아 보였는데, 그래도 내 옷은 아니지 싶었다. 망설이는 날 보고 눈치 빠른 점원이 바로 치고 들어왔다. “왜요, 잘 어울리시는데요.” “아니에요. 평소에 이런 옷을 잘 안 입어서.” “저도 그랬는데, 요즘 유행이라 괜찮더라고요. 이럴 때 한번 입어 보는 거죠.” 지나고 나면 창피할지언정, 유행 안에 속해 있으면 오히려 손가락질 받을 염려는 없다. ‘그래, 이럴 때 한번 입어 보자. 누구나 입잖아.’

누구나 입을 순 있어도 난 아니었다. 어느 날 아침, 거울 앞에서 난 이 잔꽃무늬 원피스를 입지 않으리라는 걸 예감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옷에 관한 한 우리는 조금이나마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트렌드에 따라가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주려는 사람도 있고, 멋을 내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입는 모습을 보여 주려는 사람도 있고, 남들이 아무도 입지 않는 옷을 입는 사람이라는 걸 강조하려는 이도 있다. 옷이 그 사람의 직장 생활과 친구 관계 등 여러 가지의 역학 관계에 따라 결정된다고 하면 과장일까? 옷이 문제였다기보다는 지나치게 여성스러운 옷을 입은 후에 쏟아질 주변의 말들과 시선을 두려워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거다.

이걸 입고는 집 밖으로 나갈 용기가 없었다. 나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북극에 가서는 꽃 종류가 다른 원피스를 다양하게 구비해 룰루랄라 입어도, 여기 서울 땅에서는 실눈을 뜨고 봐도 보일까 말까 한 작은 꽃무늬도 안 될 일이었다. 이 옷은 나의 로망이었을 뿐이다. 옷이 그 사람의 평소 가치관을 대변한다면, 못 입고 집 안에 처박아 놓은 옷은 그 사람의 평소 욕망을 대변하는 걸지도 모른다. 꽃무늬 원피스는 지금 이 시대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인 건 맞지만, 그 주어가 ‘나’는 아니었던 것이다.

나지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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