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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4.01 20:55 수정 : 2009.04.01 20:55

나의 그녀들 / 오기사 제공

[매거진 esc] 오기사의 도시와 건축

서울을 통과하는 한강 위에는 대략 스물여섯 개의 다리가 있다. 보행자 전용 다리와 여의도를 잇는 짧은 다리까지 합하면 그 개수는 좀더 많아진다. 어쨌든 나는 그중에서 청담대교가 제일 좋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데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어쨌든 도시를 향한 내 개인적인 관점에서 가장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 주는 그녀가 제일 좋다. 복층으로 생겼다는 점도 매력적이고 7호선 지하철을 타고 지날 때마다 펼쳐지는 경관도 제법이다. 북단의 고가 진입로는 거대한 포물선을 그리는데, 조형적으로 봤을 때도 그럴싸한 풍경을 제공한다. 다리의 남단에는 벤치 몇 개가 놓인 작은 쉼터가 있다. 그곳에 앉아 빠르게 지나는 지하철의 움직임을 느긋이 관찰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된다. 이 모든 이유로 강변도로를 운전하며 청담대교를 지나칠 때마다 난 그녀에게 고백을 한다. ‘난 네가 제일 좋아.’

물론 그녀는 대답이 없다. 그러면 또 어떤가. 본디 외로운 인생. 마음으로 고백하고 가슴에 담을 상대가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니면 또 어떠한가. 세상에는 바라만 봐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이 분명 존재한다.

그런데 최근 새로운 대상이 등장했다. 사실 새롭지는 않다. 늘 같은 그 자리에 있어 왔지만 내가 그녀의 매력을 모르고 있었던 것뿐이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 원효대교. 외모지상주의가 팽배하여 화장으로 본질을 숨기는 것이 일반적이 되어 버린 요즘 같은 시대. 한강의 다리들 역시 현란한 조명으로 자신의 모습을 어둠 속에 감춘다. 그럴수록 원효대교의 담백하고 소박한 모습에 내 마음이 더 이끌리는 게 당연지사다. 내게 원효대교는 바로 그런 담담한 얼굴을 지닌 존재다.

오기사의 도시와 건축
무엇보다도 온전히 콘크리트만으로 존재를 알리는 그 단순함이 좋다. 브이(V)자 형태로 생긴 교각과 그 교각 사이의 간격을 넓히기 위해 날렵한 아치 구조의 형태를 지닌 콘크리트 상판, 그리고 최소한의 기능을 위한 난간과 가로등. 그것이 그녀의 전부다. 군더더기가 없다. 어쩐지 진실한 상대로 내 앞에 나타날 것만 같다.

물론 내 마음이 원효대교를 향해 살짝 기운다고 해도 청담대교는 질투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보다 다리가 편하다. 나는 안심하고 새로운 상대에 탐닉할 수 있다. 나의 은밀한 시선으로 교각을 훑고 내 차의 바퀴로 상판을 탐한다. 화장기 없는 한강의 다리들, 그녀의 모습이 나는 좋다.

오영욱/건축가·오기사디자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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