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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4.06 19:55 수정 : 2009.04.06 19:55

[생활2.0]

창문 한가득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에 드디어 봄이 왔나 싶어 밖으로 뛰쳐나갔다가 꽃샘·잎샘추위에 으스스 떠밀려 다시 집 안으로 들어오길 벌써 여러 차례. 원래 간절히 기다리는 건 늦게 오는 법이라지만 너무한다 싶어 일부러 안 그런 척하기로 했다. 하루에 열두 번도 넘게 쪼그리고 앉아 들여다보던 마당을 눈길 한번 안 주고 지나치고, 진작부터 뿌리고 싶어 만지작거리던 꽃씨들도 다시 선반 위 높은 곳에 올려놓았다.

그랬더니 진짜 거짓말처럼 봄이 왔다. 마당 여기저기에서 잔디와 꽃들이 새싹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나 기다렸는데 …. 부지런히 좀 오지 그랬어? 얼었던 땅이 녹고, 얼었던 물이 녹고, 얼었던 마음이 녹았다. 죽은 것 같던 능소화 마른 가지에서 새순이 돋고, 작년보다 식구 수를 늘린 수선화가 뾰족뾰족 고개를 내민다. 기특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한데, 문제가 생겼다. 아직 꽃씨도 뿌리지 않았는데, 작년에 꽃이 지며 떨어진 꽃씨들이 마당 여기저기서 툭툭 흙을 밀고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이지 새싹이라면 어느 것 하나 귀하고 이쁘지 않은 것이 없는 이때, 정체를 알 수 없는 새싹들이 지나치게 너무 많이 올라오자 슬금슬금 불안해지는 이 마음은 또 뭐란 말인가. 그건 화초의 새싹과 잡초를 구분할 줄 모르는 나의 무지가 올해에는 또 어떤 꽃을 희생시킬까 염려스러워서였다. 작년 봄, 잡초인 줄 알고 열심히 뽑았던 것이 나중에 꽃의 새싹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의 미안함이란 …. 그렇다고 제때 뽑아주지 않으면 여름 내내 잡초와의 전쟁을 치러야 할 테니 잡초로 의심되는 것을 계속 두고 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래저래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도대체 잡초란 누가 어떤 기준에 의해서 정한 것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쑥이 우리 집 꽃밭에 자라면 잡초지만 이웃이 쪄다 준 향긋한 쑥 개떡 한입 베어 물면 잡초라고 한 게 괜히 미안해진다. 클로버도 그렇다. 클로버 역시 우리 집 잔디밭에 출현하면 어떻게든 뽑아내야 하는 잡초지만, 어렵게 네잎 클로버를 찾아 좋아하는 아들놈에게 어떻게 잡초라고 말할 수 있냐 말이다.

텃밭에서는 고추를 심은 곳에 고추가 아닌 것이 나면 다 잡초고, 토마토를 심은 곳에 토마토가 아닌 것이 자라면 다 잡초지만, 꽃밭에서 화초와 잡초를 구분하는 일은 아직 내겐 너무나도 어려운 숙제다. 누군가가 잡초는 그 가치가 아직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풀이라고도 했다는데, 그냥 나오는 대로 다 키워볼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시처럼 그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내가 불러 주면서 말이다. ^^

이경미/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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