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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4.09 19:44 수정 : 2009.04.10 08:58

당신의 위원회는 밤새 안녕하십니까 / 그래픽 홍종길 기자 jonggeel@hani.co.kr

[뉴스 쏙]

‘작고 효율적인 정부’의 진실

저희는 정부 산하 위원회라고 합니다. 퇴출 걱정 없다는 공무원 조직이지만 요즘 저희는 걱정이 태산입니다. 저희는 원래 딱딱한 공무원 사회에 말랑말랑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기 위해 전문가들과 각계 대표들로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권력의 홍위병’, ‘비효율의 대명사’로 욕을 많이 먹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지난해부터 저희 식구를 줄이려고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이젠 필요가 없어진 위원회는 당연히 없애야겠죠. 하지만 위원회가 그저 회의나 하는 조직이란 통념에는 할 말이 좀 있습니다. 저희 위원회는 1948년 정부조직법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 출범과 함께 출발한 유서가 있는 조직입니다. 저희 이야기 좀 들어보시죠.


위원회 1년 만에 140개 없어져

행정안전부 경제조직과에 따르면 지난해 573개로 파악됐던 위원회 가운데 무려 140개가량이 폐지됐습니다. 여기서 ‘폐지’란 조직만이 아니라 법령도 없애 위원회가 다시 부활될 수 있는 근거까지 없앴다는 뜻입니다. 행안부는 지난해 5월 국무회의에서 위원회 273개를 줄여 300개 수준을 유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1년 안에 목표의 절반을 달성한 것입니다.

이 번에 퇴출당한 위원회들은 대부분 설립은 해놓고 한 번도 회의를 하지 않은 것들이 다수라고 합니다. 1986년 설립된 평화의 댐 건설추진위원회는 1998년 이후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고 시도교육분쟁조정위도 2000년 이후 회의를 한 적이 없습니다. 또 기능이 다른 위원회와 중복되거나 정부 부처에서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위원회도 통폐합시켰다고 합니다. 행안부는 다음달 위원회 정리와 관련된 중간 보고서를 낼 계획입니다.

아시다시피 이명박 정부는 2008년 2월 출범하면서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표방했습니다.‘위원회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며 중앙인사위원회를 행안부에 통폐합시키는가 하면 국가청렴위원회와 국민고충처리위원회를 합쳐 국민권익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또 과거사 관련 위원회 통폐합 등 대대적으로 위원회를 정리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어 4월 감사원이 위원회 감사 결과를 발표했고 그 결과를 행정안전부가 받아 위원회 정리 계획을 세웠습니다. 지난해 12월에는 중복 유사 위원회를 통폐합할 수 있어 ‘위원회 남설 방지법’으로 불리는 행정기관 소속 위원회 설치 운영에 관한 법률도 내놨습니다.

“위원회 공화국 벗겠다”
작년 140개 없애더니
또 한편에선 다수 신설
MB맨들 한자리씩

불필요한 간판 떼야지만
인권위·과거사위 등
꼭 필요한 곳도 칼질
대청소인가 대학살인가

위원회가 뭐기에

원래 위원회는 1명이 최종 결정을 하는 피라미드 구조의 기존 관료체제와 달리 각 분야 전문가들과 각계 인사들이 참여해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고 의사 결정을 내리는 행정 조직입니다. 급변하는 환경 변화 속에서 상명하달식 관료 시스템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좀더 유연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민관 공동 의사결정 조직에서 논의하기에 적합한 문제들을 결정하자는 취지죠.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1970년 <미래의 충격>이란 책에서 향후 위원회 같은 임시 행정조직이 큰 구실을 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리나라에서 위원회는 그 기원이 1948년으로 제법 오래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위원회는 정부가 예산을 지급하는 중앙행정기관 기능을 하는 행정위원회, 그리고 정부 부처 자문을 하는 자문위원회가 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위원회들이 대표적인 행정위원회들입니다. 행정위원회들은 당연히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지만 자문위원회들은 위원들에게 거마비 정도만 지급합니다.

행정위원회 가운데 가장 오래된 위원회는 1956년 설립된 노동부 산하 중앙노동위원회가 있습니다. 다음이 중앙토지수용위원회(62년), 공무원소청심사위원회(63년), 이북5도위원회(64년) 순입니다. 자문위원회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1949년에 설립된 법무부 산하 변호사징계위원회입니다. 광업조정위원회(51년 12월) 기부금심사위원회(52년1월) 원자력위원회(58년3월) 등이 장수 위원회들입니다.

무엇에 쓰는 위원회인고?

정부 산하 위원회 수 변화 ( *2008년 위원회가 573개로 늘어난 것은 행안부가 정부 산하 위원회를 정리하면서 170여개의 누락된 위원회가 추가 파악됐기 때문임.)

사실상 행정부처 기능을 하는 행정위원회와 달리 장관을 보좌하는 자문위원회들 중에는 독특한 위원회들이 많습니다. 화장품위원회, 해양심층수위원회는 어떻습니까? 여권(旅券)심의위원회와 기부금심의위원회도 있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우주사고위원회는 독자 로켓을 쏘지 못한 우리 현실보다 다소 앞서 간다는 느낌도 줍니다.

이름만으로는 뭘 논의할지 알기 어려운 위원회들도 많습니다. 중앙건강가정정책위원회, 기업애로조정심의회, 국어능력향상정책협의회, 보편적시청권보장위원회가 대표적입니다. 결국 기업애로조정심의회와 국어능력향상정책협의회는 지난해 10월 폐지됐습니다. 또 종묘위원회와 종자위원회(농림수산식품부), 산업발전심의회와 산업기술발전위원회(지식경제부)처럼 이름이 비슷한 위원회들도 눈에 띕니다.

참여정부는 위원회공화국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2000년 319개였던 위원회는 2003년 참여정부 출범 이후 꾸준히 늘어 지난해 역대 최대인 573개까지 늘었습니다. 하지만 참여정부가 위원회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들은 주된 이유는 정부 부처 위원회들을 늘린 것 때문이 아니라 청와대에 위원회를 뒀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참여정부는 청와대에 10여개의 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이들 대통령 직속 위원회들은 부동산정책, 양극화 해소, 국가균형발전 등의 현안을 다뤘습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등은 ‘옥상옥’이라며 위원회의 활동 자체를 맹비난했죠. 일부 법학자들은 대통령 직속 위원회는 법적 근거가 없는 것들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위원회에 대한 이런 비판에는 이념 공세적 측면도 있다는 반론도 만만찮습니다.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사실상 이끌었던 이정우 경북대 교수는 “관 중심의 한국 행정 현실에서 위원회는 꼭 필요하다”며 “위원회가 없다면 개혁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전 참여정부 청와대 비서관은 ‘국방계획 2020’이나 국가균형발전계획, 부동산 정책 등 참여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던 국정과제는 상당 부분 위원회 작품이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위원회의 옥석을 가리지 않고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겁니다. 위원회의 대부분인 자문위원회는 행정기관과 달리 거의 예산을 쓰지도 않는데도 무조건 비효율적이라고 비판을 한다는 것입니다.

위원회 위에 위원회 있다?

위원회의 이런 특성 때문에 이명박 정부도 출범 이후 위원회를 여럿 만들었습니다. 국가브랜드위원회, 국가경쟁력강화의원회, 미래기획위원회, 국가원로회의 등 이름도 특이한 위원회가 줄줄이 등장했습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도 위원회병이 도졌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행안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예산 집행과 행정기능이 존재하는 행정위원회는 42개로 6개가 늘었습니다. 자문위원회도 20개 정도가 새로 생겼습니다.

이명박 정부 위원회들에 대한 비판에는 ‘위원회 위의 위원회’들이 보인다는 것도 있습니다. 위원회가 대선 때 이 대통령 측근 인사들의 중간기착지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과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대표적입니다. 강 전 장관은 금융위기에 대응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물러났다가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2대 위원장을 맡아 이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습니다.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이었던 곽 위원장은 지난해 6월 청와대를 떠났다가 미래기획위원장으로 복귀했습니다.

현인택 고려대 교수와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도 비슷합니다. 이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입안한 현 교수는 입각에 실패했지만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으로 있다가 올해 초 통일부 장관이 됐습니다.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은 초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후보로 거론됐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뒤 국가브랜드위원장으로 전격 기용됐습니다. 위원회를 새로운 어젠다의 설정 공간이 아닌 측근 인사들의 자리로 쓴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위원회 정리 기준은 결국 이념 문제?

반대로 꼭 필요한 위원회는 줄인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축소입니다. 한때 우리 사회 인권의식의 성장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아온 인권위는 이달 초 행안위의 직제개정령으로 인해 조직과 인원이 대폭 축소됐습니다. 독립기관인 인권위는 정부의 일방적인 방침에 반발해 헌법소원을 내놓은 상태입니다. 인권위의 모습을 보면 지난해 2월 정부출범과 함께 국민권익위원회로 통폐합되어 사라진 부패방지위원회의 모습이 겹쳐 보입니다.

과거사와 관련된 13개 위원회도 대폭 줄이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뉴라이트 출신의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은 4·3제주항쟁, 광주민주화운동, 태평양전쟁 피해 유가족, 납북피해자 등 13개의 진상규명위원회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로 통합하자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이에 대해 민주당과 당사자들은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 법안이 효율을 주장하고 있지만 과거사 진상조사를 대충 끝내보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주장입니다. 위원회의 77%인 444개가 국회에서 제정한 법률로 설치되었기 때문에 민주당이 이렇게 반대하면 정부가 공언한 위원회 정리는 어려워집니다. 실제로 정부가 폐지를 요청한 기부심사위원회와 자원봉사진흥위원회는 국회에서 ‘존치’ 판정을 받아 계속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위원회의 탄생과 소멸의 판단 기준이 국민들에게 얼마나 보탬이 되느냐 여부가 아니라 이처럼 이념 문제로 비화하는 것 같아 저희 위원회들은 답답합니다. 이런 논쟁을 벌이다가 혹시 위원회축소위원회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지 걱정입니다.

권은중 기자 detail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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