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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언의 싱글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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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나지언의 싱글 라이프
그때 난 3일을 씩씩거렸던 것 같다. 첫 직장에서 만난 ‘30대 싱글 여자 선배’한테 부당하게 혼났다고 생각하면 화가 나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녀는 매번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후배들을 타박하기 일쑤였다. 좋은 건 다 자기가 해야 직성이 풀리고, 후배가 잘되는 건 절대 못 보는 사람이었다. 상사 앞에선 낙엽만 굴러가도 웃던데, 우리 앞에서는 3세 이후로 한 번도 웃지 않은 것처럼 굴었다. 그때 회사를 다니던 친구들의 적도 모두 ‘결혼 안 한 30대 싱글 여자 선배’였다. (무슨 지하 조직이라도 있는 걸까?) 지금 생각해보면 별일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때는 결혼 안 하고 일중독인 30대 여자 선배들을 지옥에서 온 악마쯤으로 생각했다. 사표를 내면 냈지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몇 번이고 생각했다.<개그콘서트>의 인기 폭발 코너 ‘분장실의 강선생님’은 요즘 내가 제일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다. 꼭 저렇게 두말하는 선배 있지, 꼭 저렇게 자기 일도 못하면서 오지랖 넓은 선배 있지, 꼭 저렇게 못생겼으면서 예쁜 척하는 선배 있지. 나는 결혼 안 한 한심한 30대 싱글 여자들을 조롱하는 강유미와 안영미의 똑똑한 개그에 몇 주를 신나게 웃었다. 너무 심취한 나머지 후배들 앞에서 ‘니들이 고생이 많다’ ‘우리 땐 안 그랬어, 이것들아’ 흉내도 내봤다. 하지만 어제 새벽, 아침형 인간들이 일어나는 시간인 5시에 집에 들어가면서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번뜩 들었다. 잠깐만, 이건 어디서 많이 본 건데. 이건….
눈치 빠른 여러분은 아마도 왜 내가 이 글을 시작했는지 짐작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난 지금 일찍 집에도 못 가고, 주말엔 회사에 나오고, 일은 잘할 여유도 없이 느리고, 후배들은커녕 내 한 몸도 챙기지 못하는, ‘결혼 안 한 30대 싱글 여자 선배’가 돼버렸다. 한마디로 악마가 된 것이다.
이젠 ‘분장실의 강선생님’을 보면서 웃을 수 없을 것 같다. 후배들 앞에서 감히 ‘우리 땐 안 그랬어, 이것들아’ 흉내도 못 낼 것 같다. 우리 때도 그랬으니까. 경기가 어려워 멋있게 사표를 내고 떠나겠다는 각오도, 미안하지만 반납해야겠다. 그나저나 결혼 안 한 30대 싱글 여성인 우리가 왜? 뭐가 문제인 건데?
나지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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