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4.15 18:22
수정 : 2009.04.15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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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정답을 알아요! 그래픽 이정희 기자 bb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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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방송가의 스테디셀러 퀴즈쇼… 지식 검증에서 생활 밀착형으로 변하는 질문 트렌드
퀴즈쇼는 인생이다.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인도 빈민촌에 사는 18살 소년 자말은 인기 최고의 퀴즈쇼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가>에 출연해 최고 우승 자리에 오른다. 빈민가 소년의 실력을 사람들은 의심하지만 정답은 바로 소년의 인생, 그 안의 경험에 있었다. 소년의 사연처럼 삶의 경험에 따라 그가 풀 수 있는 문제 또한 달라질 것이다. “퀴즈쇼는 티브이 프로 중 그저 시선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안방에서도 직접 참여해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르”라는 <도전! 골든벨>(한국방송)의 이낙선 책임피디의 말처럼, 지금 보고 있는 퀴즈 프로도 분명 당신을 둘러싼 현실과 관계있다. 당신의 인생 경험으로는 어떤 문제를 맞힐 수 있을까. 최근 변화하는 퀴즈쇼의 모습을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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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첫 방송된 <장학퀴즈>는 대한민국 티브이 방송 사상 유례가 없는 최장수 프로그램이다(문화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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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셰, 어떻게 갖고 놀까
많은 퀴즈쇼들은 전형적인 요소들을 가져간다. 손범수, 신영일 등 튀지 않는 이미지의 진행자나 가족들의 응원 멘트. “모든 상금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선택하시겠습니까?”라고 물으면 90% 이상은 선택하는 출연자들. 하지만 퀴즈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각의 장치들이 프로그램 개성에 맞게 변용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올해로 10년째를 맞는 <도전! 골든벨>의 이낙선 피디는 프로그램의 인기 이유를 묻자 학생들이 쓰는 모자, 앉은자리로 쓰는 판처럼 사소하고 구체적인 이유를 들었다. “학생 모두가 모자를 쓰는 것도 <골든벨>이 발견한 주요 장치”라며 “예전에 교모를 썼던 세대와 연결 고리의 의미도 있고, 멀리서 몇 번 친구가 남아 있는지 보려면 모자에 번호판을 붙이는 게 효율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 3월 첫 방송을 한 <음악퀴즈쇼 난 알아Yo!>(엠넷)는 아예 기존 퀴즈쇼의 포맷을 ‘삐딱하게, 까칠하게 보는 것’에서 시작됐다. 엠시 정재용과 이하늘이 그룹 소방차가 입었던 풍성한 바지를 입고 서태지의 ‘난 알아요’ 춤을 추면서 스튜디오 불을 켜는 이 쇼는 버저, 효과음, 상품 등 하나도 허투루 넘긴 것이 없다. 김태은 피디는 “<난 알아Yo!>란 제목이 나온 건, 버저가 삐!!!! 또는 띠리리~ 말고 ‘난 알아요!’라고 울리면 재밌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라며 “사회자가 ‘문제 발사!’라고 손을 뻗는 것도 남들 하는 기존 스타일과 다르게 하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범인 공개수배 프로였던 <사건 25시>의 배경음악이나 <장학 퀴즈>의 배경음악을 뒤섞고, 성우에게 문제를 핸드폰 기계음 스타일로 읽게 한 것도 기존 프로에 대한 ‘반골 정신’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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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원대 상금을 놓고 출연자들의 긴장감있는 경쟁을 보여준 <생방송 퀴즈가 좋다>(문화방송). 문화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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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퀴즈 문제 어떻게 만들까?
<난 알아Yo!>의 장난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조혜련의 노래 ‘아나까나’가 왜 금지곡이 되었는지(정답: 수준 미달), 동방신기가 데뷔 초 무슨 그룹을 표방했는지(정답: 아카펠라) 등 웃음을 참을 수 없는 자료화면과 자막, 질문들이 현란하다. 김태은 피디는 “한 출연진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른 퀴즈쇼라며 녹화 중 나가버렸다. 여러가질 고민해, 너무 4차원적으로 가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예능 프로그램 <세바퀴>(문화방송)와 <스타 골든벨>(한국방송) 등에서 설문 조사나 난센스를 적극적으로 내세워 이른바 생활 밀착형 퀴즈가 연예인들의 토크 주제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하는 건 이미 시청자들에게 익숙하다. 최근엔 정통 퀴즈 프로에서도 퀴즈 출제에 관한 고민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그 예로 35년 역사를 자랑하는 <장학 퀴즈>(교육방송)는 단답형의 암기형 퀴즈가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시청자들이 직접 출제하는 문제를 제공받는가 하면, 보기를 먼저 보여주고 출연자가 질문을 맞히는 역순으로 문제를 꾸민다. <장학 퀴즈>의 이은정 피디는 “웹 2.0에 맞는 퀴즈가 콘셉트”라며 “인터넷으로 자신이 직접 출제한 문제를 올리는 시청자들도 최근 급증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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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기넘치는 아이디어로 퀴즈의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는 <음악퀴즈쇼 난 알아Yo!>(엠넷). 엠넷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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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영웅은 뭘 가져가나?
퀴즈쇼의 최종 우승자가 만인의 부러움을 받는 건, 방송의 맨 마지막 장면만 봐도 알 수 있다. 장학금 증서를 들고 활짝 웃는 고등학생부터, 1000만원 티켓을 위로 번쩍 치켜들고 흔드는 퀴즈 영웅까지, 묵직한 상품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상품에 대한 의미와 포장 방식은 다양하게 변모했다. <장학 퀴즈>와 <퀴즈 아카데미>는 모두 학생들의 학업을 응원하기 위한 장학금이라는 명목으로 상금을 전달했다. 한편 에스비에스에서 방영해 화제를 모았던 <알뜰살림 장만 퀴즈>는 2000년대 초 가전제품 상품으로 주부들의 선풍적인 참여도를 이끌어냈다. 현재 가장 많은 상금을 걸고 퀴즈를 푸는 <1 대 100>의 경우엔 5000만원의 상금을 6% 정도의 세금만 떼고 우승자가 다 가져간다. 국내에서 1000만원 단위의 상금이 시작된 것은 2000년대 초 문화방송에서 방영된 임성훈의 <퀴즈가 좋다>이다. 지식의 평가보다 스릴 있는 퀴즈 경쟁 자체를 프로의 중심에 놓고, 상금에 무게중심을 실었던 프로다.
특히 국내에서는 상품을 돈뭉치가 아니라, 의미 있는 아이템으로 변화하시키기 위한 시도가 시청자들의 공감을 산다. <대한민국 국민고시>(에스비에스)의 허윤무 피디는 “돈 놓고 돈 먹는 해외 퀴즈쇼에 비해, 우리나라는 국민 정서상 상품의 공익성을 중요하게 본다”면서 퀴즈쇼에는 ‘일확천금’의 판타지도 있지만 “출연자들이 돈만 보고 출연한 것이 아니길 기대하는 심리가 있다”고 말했다. <퀴즈 대한민국>에서는 퀴즈 영웅이 되면 40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는데, 그 절반은 이공계 육성 장학금으로 전달된다. 돈만 챙기는 게 아니라, 사회 공익적인 측면에 한 차원 기여하게 된다는 의미다. 최근엔 기존의 상품에 대한 범주도 희미해졌다. <난 알아Yo!>에서는 사회자가 평소 친한 연예인들에게 전화를 직접 돌리며 상품 협찬을 요청한다. 이하늘 매니저조차 18만원가량의 은갈치 낚시대회 출전권을 상품으로 내놓았다. 노트북 등 ‘퀴즈왕’에게 주는 상품과 달리, “돈이 아니라 재미를 가져가는 퀴즈쇼”를 추구한다는 차원이다.
글 현시원 기자
qq@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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