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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4.22 19:46 수정 : 2009.04.22 19:46

독일 베를린의 길거리 서점. 우리나라 여행자들도 현지에서 직접 책을 구입해 살아 있는 정보를 얻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매거진 esc] 노중훈의 여행지 소문과 진실

부끄러운 고백 한 가지. 6~7년 전쯤 아는 사람으로부터 특정 외국 도시에 대한 여행 가이드북의 감수를 맡아 달라는 부탁이 들어왔다. 시간은 촉박해도 일 자체가 어려울 성싶지는 않았다. 문제는 내가 그 도시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 주저하고 망설이기를 거듭하다 결국 호구지책을 핑계 삼아 그 일을 수락했다. 가이드북은 일본에서 만든 것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었다. 따라서 한국 사정에 맞지 않는 부분을 고치거나 새로 첨가하는 일을 맡았다. 여행 정보의 사실관계를 검증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책을 사간 독자들이 그런 사정을 알 리가 없다. 지금도 가끔 그 책에 관해서 물어오거나 내가 그 도시의 전문가인 줄 착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원고를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얼굴이 달아오른다.

여행 서적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온다. 대형 서점의 매대는 엇비슷한 제목의 여행 에세이들로 넘쳐난다. 여행 책의 스테디셀러인 가이드북도 마찬가지다. 10년 가까이 여행 전문 기자로 일했던 어느 후배는 최근 단행본 기획안을 출판사에 제출했더니 “불가하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이 여행 기획안을 들고 찾아오기 때문에 ‘소화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또다른 출판사에서 일하는 한 지인은 예전에 비해 한결 줄어들기는 했지만, 한 달가량 생애 최초로 배낭여행을 다녀온 대학생들이 책을 내겠다며 출판사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린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출판의 자격과 기준을 한 줄로 세울 수야 없지만 과열됐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여행의 편의성 제고와 디지털카메라의 엄청난 보급이 ‘여행 서적의 민주주의’를 낳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과열 양상은 하향 평준화를 비롯해 여러 가지 부작용을 수반한다. 모든 여행 관련 책들을 탐독한 것도 아니고 게다가 흠결까지 있는 사람으로서 따따부따할 계제는 아니지만 안타까운 현실에 마음 한쪽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여행 에세이들 중에는 감질나게 ‘풍경의 거죽’만 만지작거리다 끝나거나 감정의 과잉으로 뒤범벅이 되거나 한 부분을 마치 전체적인 현상인 양 과대 포장하는 책들이 줄을 잇는다.

한발 양보해서 객관보다는 주관에 의존하는 경향이 큰 여행 에세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천편일률적인 구성과 업데이트에 게을러 지나간 정보를 버젓이 올려놓은 가이드북들은 ‘존재의 이유’를 곱씹게 만든다. 일본어 문체가 고스란히 살아 있는 책들도 눈에 띈다. 가장 큰 원인은 열악한 제작 여건에서 찾을 수 있다. 상상 외로 저렴한 제작비와 원고료, 그리고 빠듯하다 못해 부족하기 짝이 없는 취재 일정은 차별화된 정보를 길어올리고 탄탄한 콘텐츠를 생산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같은 이유로 거의 대부분의 가이드북들이 기본적인 도시와 유명 관광지에서 맴돌 뿐, 새로운 지역을 개척하기란 사실상 쉽지가 않다. 외국여행 천만명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여행의 길라잡이 구실을 하는 가이드북은 여전히 여행객의 다양한 요구에 세심하게 응대하지 못하고 있다.

노중훈 여행칼럼니스트 superwin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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