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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품행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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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돌아올 수 없어 더 그리운 80년대의 추억 5
작년·재작년만 해도 얼굴 달아오르던 ‘촌티 패션’이 어엿한 최첨단으로 돌아왔지만 돌아올 수 없어 더 그리운 것들도 있다. 80년대의 10대들을 열광적으로 또는 은밀하게 사로잡았던 그 시대의 아이콘들을 추억해보자.
⊙ 롤러스케이트장 | 약칭 ‘로라장’. 기본적으로는 스포츠 시설이나 80년대 후반까지 10대들의 복합사교문화공간으로 널리 애용되었다. 남녀공학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절, 로라장은 작업의 장이자 데이트 공간이었으며 최신 댄스 팝송을 발 빠르게 선보였던 트렌드세터이기도 했다. 교육당국 공식 지정 청소년 유해업소였으나, 과잉 축적된 2차성징기의 호르몬을 감당할 수 없었던 10대들에게 로라장은 유일한 해방구였다. 짝 있는 이들은 그곳에서 삼삼오오 앞사람 허리를 붙잡고서 기차놀이를 했고, 작업에 목숨 건 남학생들은 ‘백 스텝’ ‘지그재그 스텝’ 등의 고난도 기술을 과시하며 구애의 춤을 추었다.
⊙ 메이커 의류 | 교복 자율화의 시대, 메이커는 학생들 사이에서 부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였다(아직 ‘명품’이라는 단어는 도착하지 않았다). 부모님을 졸라 ‘하이포라’ 방수 점퍼에 조다쉬 청바지, 100미터 방수를 자랑하는 돌핀 손목시계에다 나이키 조깅화 한 켤레까지 얻은 다음날이면 쓸데없이 보폭이 커졌다. ‘siazenger’, ‘nice’ 등 짝퉁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았던 가짜 메이커의 범람도 80년대의 또다른 풍속도. 감쪽같은 짝퉁들이 판치는 오늘날에 비하면 나름 예의와 겸손이 통용되는 시대였던 것이다.
⊙ 카세트테이프 | 라디오 겸용 카세트 하나면 나만의 최신가요 혹은 팝송 컴필레이션 테이프를 만들 수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라디오 디제이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전주가 나온 후에도 지루하게 멘트를 읊조리는 이는 차라리 양반. 진정한 충격과 공포는 무사히 녹음에 성공했다고 안도하는 순간 간주에서 터져 나오던 멘트 복병의 기습이었다. 이 노동집약적 작업이 번거로웠던 이들은 곡목을 적은 메모지를 들고 인근의 레코드가게를 찾았다. 그렇게 완성된 나만의 컴필레이션과, A면이 끝나면 자동으로 B면이 재생되는 ‘오토리버스’ 기능의 마이마이 미니카세트는 학력고사 세대의 몇 안되는 위안거리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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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마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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