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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4.29 22:01 수정 : 2009.05.02 13:58

카필라 성의 보리수 그늘 아래, 선잠에서 깨어보니 검은 개 한마리가 발밑에서 자고 있었다.

[매거진 esc] 독서광 노동효의 썸플레이스 <논픽션 붓다>와 카필라 성에서의 낮잠

‘천상천하 유아독존’, ‘동문유관’, ‘염화미소’, ‘곽시쌍부’…. 국정 교과서부터 불교 서적에 이르기까지 부처에 얽힌 여러 이야기들을 듣고 배우고 읽었지만, 나는 부처의 전 생애를 알지는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경기도의 한 암자에서 지내는데 우연찮게 한 권의 책이 손안으로 들어왔다. 유홍종의 <논픽션 붓다>. ‘지금까지 나와 있는 객관적인 자료들을 뽑아서 부처님의 생애를 한눈에 읽을 수 있도록 정리’한 다큐멘터리 소설이었다. “부처님 얘기는 작가가 써야 재미있을 텐데”라는 노승의 말에 힘을 받아 쓰였다는 <논픽션 붓다>를 읽는 동안, 내 머릿속에 흩어져 있던 이야기들이 한눈에 정리가 되었다. 탄생과 출가, 위대한 깨달음, 승단 조직과 제자들, 전도여행, 달마의 진실, 귀향, 행복에 이르는 길, 대열반.

나는 싯다르타가 탄생했다는 룸비니를 방문하기로 했다. 이젠 ‘논픽션’을 나 스스로 확인할 차례였다. 각국에서 온 방문객들은 아기 부처의 몸을 씻겼다는 연못가를 거닐고, 아소카 탑 앞에서 기도를 올리고, 각국의 사찰들을 돌다가 떠나곤 했다. 싯다르타가 출가하기 전까지 왕자로 지냈던 카필라 성은 룸비니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에 있다고 했던가? 룸비니까지 온 참에 카필라 성까지 나 홀로 가보기로 했다. 이른 아침 비스킷 몇 조각과 생수 한 통을 챙긴 뒤 길을 나섰다. 지평선이 보이는 너른 평원 위로 보리가 익어가고, 길 위론 버스 한 대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뒤 마을 사람들에게 카필라 성이 어디에 있는지 물으며 걸었다. 아소카 나무가 길게 늘어선 길이었다. 7㎞를 걸어 카필라 성에 도착했다. 나는 무너진 벽돌 더미가 2500년 전에는 성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성안으로 들어섰다. 성 한가운데 자리한 궁전엔 높이 1m 정도의 벽돌담만이 남아 방들을 구분 짓고 있었다. 검은 개 한 마리 나비를 아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고, 소 한 마리 보리수에 옆구리를 대고 가려운 곳을 긁고 있었다. 따뜻하고 나른한 정오였다. 먼 길을 걸어온 탓에 나는 고단했다. 카필라 성의 방 한 칸에 누워 잠깐 쉬기로 했다. 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려주었다. 싯다르타도 이곳에서 잠을 잤겠지. 그리고 눈 감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상상인지, 꿈결인지 망막의 잔영들 위로 벽돌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담이 생기고, 벽이 생기고, 창문이 생기고, 지붕이 생기더니 나는 궁전의 한 칸에 누워 있었다.

흰 구름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정해두지 않은 채 흘러갔고, 붉은 꽃이 봉오리째 툭, 목을 꺾으며 떨어졌으며, 나무 아래로 이파리 하나가 떨어졌다. 인간은 꽃이며, 구름이며, 이파리였다. 꽃들에게 물었다, 너는 왜 꽃 핀 채로 있지 않고 가지에서 떨어져 죽음을 맞느냐고. 구름에게 물었다, 너는 왜 구름인 채로 있지 않고 빗방울로 떨어져 죽음을 맞느냐고. 이파리에게 물었다, 너는 왜 이파리로 있지 않고 가지에서 떨어져 흙으로 돌아가느냐고. 꽃도, 구름도, 이파리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바람에 흔들리는 보리수 이파리들이 2500년 전의 노래를 불러주었다.

“가야금 줄을 너무 조이니 줄이 끊어지네. 가야금 줄이 너무 느슨하니 소리가 안 나네. 가야금 줄은 알맞게 조여야 소리도 좋지.”

노동효 여행작가·<길 위의 칸타빌레> 저자

newcross@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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