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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구글’ 떡 하나 더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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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쏙]
통비법 개정땐 국내포털도 감청대상
사이버망명 늘어 외국업체 날개달기
한국 정부가 구글을 손보겠다고 벼르고 나섰지만 정작 정부 여당의 통신 정책은 정반대로 국내 업체들은 죽이고 구글만 키워주게 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구글이 이달 초 한국 정부의 인터넷 실명제를 거부하며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 한글사이트에 동영상과 댓글 올리기를 중단시키자 방송통신위원회는 구글의 위법 행위를 찾으라고 지시하고 나섰다. 그러나 정보통신 업계에선 실제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통신비밀보호법(이하 통비법)이 네이버와 다음 등 국내 인터넷 업체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반면 구글 야후 등 외국 업체들에는 날개를 달아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세계 주요 국가들 가운데 유일하게 구글 등 외국 업체를 따돌린 한국 포털들의 경쟁력이 개정 통비법으로 힘을 잃게 될 것이란 주장이다.
개정 통비법은 인터넷의 경우 아이피를 비롯한 접속 기록이 저장되고, 이 내용을 언제든 수사기관에 내줄 수 있게 돼 있다. 유·무선 전화는 물론 인터넷 전화, 이메일, 메신저, 파일 교환 등 모든 통신 수단이 감청 대상이 되며 위치 추적이 가능해진다. 이를 위해 전기통신사업자는 감청 설비를 자비로 갖춰야 하고 각종 통신사실 확인자료를 1년간 보유해야 한다.
애초 개정 통비법에서는 케이티와 에스케이티 등 통신업체들이 많게는 수천억원에 이르는 감청 장비를 구축해야 하는 점이 논란이 됐다. 그러나 통비법 개정을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는 곳은 통신업체들보다도 포털업체들이다. 휴대전화의 경우 소비자가 국가의 감청이 꺼려진다고 해도 사용 업체를 바꿀 수 없지만 이메일이나 메신저는 얼마든지 외국계 포털업체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 수사기관이 엿보기 어려운 구글의 지메일이나 엠에스엔의 핫메일 등으로 이메일을 바꾸는 ‘사이버 망명’이 누리꾼들 사이에서 시작됐다. 이런 가운데 최근 검찰이 주경복 전 서울시 교육감 후보의 선거법 위반 혐의를 수사하면서 주 후보의 7년치 이메일을 봤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인터넷 감청에 대한 누리꾼들의 불만이 더욱 커지고 있다. 업계에선 통비법이 통과되어 감청 사실이 개인들에게 통보되기 시작하면 국내 포털의 이메일을 이용하던 누리꾼들 상당수가 외국 포털의 이메일 서비스로 옮겨갈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인터넷에선 통비법이 결국은 ‘구글 지원법’ 또는 ‘사이버망명 촉진법’이 될 것이라고 비난하는 이들이 많다. 한 증권 애널리스트는 “인터넷 포털 사업에서 이메일과 메신저 이용자가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이런 사이버 망명은 한국 포털 기업에는 큰 타격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포털 사업자들은 이미 기자회견을 열고 통신 자유를 침해하며 기업에 커다란 부담을 주는 통비법을 반대하고 나섰다. 또 통비법을 통과시키더라도 인터넷 이메일과 메신저 등을 감청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아 엄정하게 집행하는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포털 사업자들을 옥죄는 법은 통비법뿐만이 아니다. 한나라당이 추진중인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하면서 명예훼손 가능성이 높은 게시물에 대해 모니터링 의무화 조항을 새로 만들었다. 이 법이 통과되면 국내 포털 사업자들은 포털에 올라오는 게시물들을 모두 검열해야 한다. 이런 검열 작업에 필요한 인력 마련에, 서버 신설 비용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 자료를 보면 구글은 해마다 연구개발비로 1조6000억원을 쓰는 반면 네이버를 운영하는 엔에이치엔은 1700억원, 다음은 192억원을 연구개발비로 쓰는 것으로 조사됐다. 구글 같은 거대 해외 포털업체들과 규모 면에서 비교가 안 되는 국내 포털업체들에 드리울 2중, 3중 규제가 국내 포털의 발목을 잡고 외국 업체들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란 포털업계의 불안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권은중기자 detail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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