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5.06 22:17
수정 : 2009.05.11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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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코 사수 007 대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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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100호 특집 ‘덕후왕 선발대회’ 수상작]
엄마 감시 피해 코스프레 활동하기 3단계 전략을 알려주마
[덕후왕 선발대회 2등] 최란
제가 이른바 오덕후 문화를 접한 것은 중2 때 친구를 통해서였습니다. 우리가 빠졌던 애니메이션 계통의 오덕후 문화는 팬시 그리기, 회지 발간, 피규어, 코스프레 등이 있지만 제가 주로 활동했던 분야는 ‘코스프레’였습니다. 처음에는 카페에 가입해 인터넷에서 활동하다가 고1이 되자마자 본격적으로 행사장을 다니며 코스프레를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코스프레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기쁨도 잠시, 학생이라는 본분 때문에 제 취미 활동을 못마땅히 여기시는 부모님으로 인해 몰코(몰래 하는 코스프레)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엔 방학 때 서울까지 올라가기도 했지만 시간적 금전적 제약 때문에 전주에서 가까운 광주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거짓말도 하면 할수록 는다더니 부모님 말씀이라면 껌뻑 죽던 제가 몰코의 요령도 점점 늘어나더군요. 몇 번 코스프레 의상을 들키고 나자 제 몰코 작전도 007 작전을 방불케 할 만큼 치밀해졌습니다.
제1단계, 2~3주 전부터 알리바이를 만들어라
숨겨진 코스프레 의상을 보신 부모님은 눈치를 채셨는지 친구와 놀러 가기 위해서는 2주 전 정도에 허락을 맡아야 했습니다. 어디 가는지 알려드려야 했기에 작전은 2주 전부터 시작합니다. 간혹 행사 가기 하루 이틀 전에 친구와 놀러간다면 돌발 행동(예를 들어 친구와의 약속 장소까지 차를 태워다 주겠다)을 하실 수도 있기에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최대한 자연스러운 타이밍에 무심히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친구와의 약속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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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게임 ‘그라나도 에스파다’의 캐릭터 워록 복장을 한 최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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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단계, 의상과 소품을 숨겨라
저는 지방에 살기 때문에 의상을 거래할 때 택배로 했습니다. 택배는 가까운 거리에 사시는 할머니 댁으로 보냈죠. 할머니께서는 제 편이시거든요. 코스프레 할 때는 캐릭터에 맞는 소품도 중요한데요, 부모님 몰래 재료를 사고, 인터넷 자료를 참고해서 소품을 만들었습니다. 낮에는 들킬까봐 주로 야밤에 만들었어요. 스탠드 불 아래 숨죽이며 하는 사포질(소품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이란! 해 본 사람만이 그 전신을 울리는 긴장과 기대의 두근거림을 알 거예요. 방문 소리나 인기척이 나면 3초 이내에 숨기는 것은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입니다.
제3단계, 엄마의 동향을 살펴라
무사히 행사장까지 갔다 해도 엄마의 육감은 방심할 수 없는 장애물입니다. 간간이 엄마와 연락을 해서 만약 의심하신다 싶으면 행사가 끝나자마자 지인분들께 의상과 소품을 맡기고 바로 집으로 날아갔습니다. 광주에서 전주까지는 버스로 1시간 30분이 걸립니다. 버스를 타면서 바로 부모님께 전화로 노래방만 들러서 놀고 간다고 하면 더없이 완벽한 시나리오예요~. 그리고 집에 와서 친구의 도움으로 자연스럽게 오늘 영화가 재밌었다느니, 미리 계획된 전화 한 통으로 마무리합니다. 그러나 이 통화 때문에 걸릴 뻔한 적도 있었어요. 하루는 너무 늦게 귀가했는데 친구와 통화하시던 엄마 왈, “오늘 란이 뭐 입고 왔었니?” 친구 왈, “아…(급당황 중) 제가 아, 안경을 안 끼고 가서 잘 아, 안 보였어욧!!!!” 역시 엄마는 두려운 존재입니다.
코스프레를 하기 위해 20kg가량 감량하기도 했고, 의상 주문을 위해서 비자금을 조성하기도 했답니다. 고1·2 동안 만화, 애니, 영화, 드라마 등의 장르를 넘나들며 15개가량의 캐릭터를 완수했습니다. 되짚어보면 무슨 체력과 열정으로 그렇게 다닐 수 있었는지, 활동하는 동안 여러 가지를 배웠습니다. 소심한 저에게 이렇게 열정적인 면도 있다는 걸 깨달았고 여러 인간관계도 넓힐 수 있었어요. 저는 현재 앉은자리에 풀도 나지 않는다는 고 3 수험생입니다. 학업 때문에 코스프레 활동은 잠시 접은 상태지만 대학에 가면 다시 할 예정입니다. 이런 저는 덕후왕?! 아니, 열정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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