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9.05.06 22:21 수정 : 2009.05.11 01:44

향기 좋은 일본 라멘(왼쪽). 라멘맛을 보기 위해 일본여행을 떠난 유재열씨를 위해 브랜드 ‘노모다’에서 만들어준 깃발.

[매거진 esc 100호 특집 ‘덕후왕 선발대회’ 수상작]
두번의 실패는 없다…나의 라멘 정복 여행기

[덕후왕 선발대회 2등] 유재열

2007년 어느 고3의 이야기야. 나른한 봄날, 특기생이란 구실 아래 3교시 만에 빠져나와 맛있는 냄새를 따라가는데 “오? 새로 생긴 라면집인가?”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가서 태어나 처음 먹어보는 일본 라멘. 생소했지만 향기가 너무 좋아, 처음 느끼는 이 오묘한 맛! 쫄깃쫄깃 짭짜름하고 시원한 국물맛. 그날 난 결심했어! 일본 라멘 요리사가 되겠어!!

그집 단골이 됐어. 매일 먹어서 어느 정도 질릴 무렵 태준닷컴에서 정태준씨의 글을 읽었어. 자전거로 일본 질주. 그의 여행기는 매우 황당하면서도 멋졌지. 내가 누구냐? 한다면 하는 놈이야. 중학교 때는 말할 것도 없는 문제아였고! 바보 같고도 낙천적인 내 가슴이 안 끓어올랐겠어? 까짓것, 일본 못 가겠어? 내 꿈을 위해 한번 가보자! 그날부터 난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했어. 주차장, 옷가게, 음식점 아르바이트! 거금 200만원이 모였고 아버지한테 허락만 받으면 되는 상태.

“아부지 저 일본 좀 갔다 올게유.” “뭔 소리여, 웬 일본을 가?” “라멘이라는 음식을 먹고 오고 싶어요. 여권만 끊어주시면 되는데…” 자신 없게 본론만 말했더니 “니가 결심하고 열심히 돈 벌어서 가는 거니깐 갔다 와도 좋아. 남자라면 그런 경험도 해봐야지”라며 여권을 끊어주셨다.

며칠 뒤 난생처음 떠나는 여행. 여름이라 쓰러질 뻔한 적도 있고, 산 타다 죽을 뻔했고, 트럭에 치여 죽을 뻔했던 기억들이 생각나네. 어쨌든 부산까지 가서 후쿠오카에 도착했지만 일본어도 서툴고, 길도 잘 몰랐고, 라멘집도 알아놓지 않는 등 너무 극단적으로 온 결과 엉망이었어. 어쩔 수 없이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아부지는 그럴 줄 알았다는 식으로 말씀하시고 난 큰 좌절에 빠졌지…라고 하면 개풀 뜯어먹는 소리! 이런 걸로 포기하면 라멘덕후가 아니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라멘을 몇 번 만들어보고, 아부지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일본어도 차근차근 공부, 요번엔 철저하게 준비하고 각 지역 라멘 특성과 위치 등 자료를 수집해 여행 루트를 다시 짰어. 덤으로 일본의 문화와 오타쿠 기운을 받기로 결정, 아부지한테 재허락 받고 드디어 제2라운드 시작!

2라운드 시작하기 앞서 라멘을 먹으려고 어떤 노력을 했냐면 아부지 건축회사에서 시멘트도 나르고 철근도 나르고 음식집 서빙하고 편의점 아르바이트 하면서 온갖 잡일을 했지. 새 자전거는 스트라이다로 다시 샀고 장비, 침낭과 텐트, 뱃삯 등 모든 준비를 끝마쳤어. 주변에선 당연히 말렸지. 대학 안 가고 뭐하냐, 바보 같은 짓 좀 그만해, 일본에서 노숙한다는 게 말이 돼? 친구들은 나보고 미쳤다고 했지. 하지만 오덕후란 게 다른 사람들한테 욕먹는다고 포기할 족속들인가?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디시인사이드 자전거 갤러리에서 협찬해준 유니폼과 깃발까지 꽂고 라멘 먹으러 출발! 옷 갈아입고 자전거로 오사카를 한 바퀴 돌았지. 라멘을 먹었지만 나의 입맛에 맞는 라멘은 아니었어. 더군다나 내 유니폼과 깃발을 보고 웃는 일본인들도 많았지. 오사카에서 시즈오카로, 다시 요코하마로, 도쿄로 또 삿포로로… 점점 더 많은 라멘과 사람들을 만났어. 여행은 많이 힘들고 많이 즐거웠지.

한편으론 너무나 외로웠어. 자전거는 상태가 안 좋아지고 휴대전화는 박살. 밤길은 무섭고 태풍도 무서웠어. 여행이 반쯤 지났을 때 디카가 파손됐고, 일본인 노숙자가 여행 자금의 3분의 1을 훔쳐간 적도 있었지. 하지만 난 포기하지 않았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포기할 이유 따윈 없잖아? 남들이 미쳤다고 괄시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오타쿠 아니겠어!? 난 아직도 라멘이 좋고, 많은 라멘을 먹고 싶고, 언젠간 라멘집을 만들어서 많은 이들에게 내 라멘맛을 보여주고 싶어!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지 말고 절대로 의심하지 마. 한번 사는 인생 자신이 즐겁고 좋아하는 인생으로 살아야 되는 거 아니겠어?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커버스토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