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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5.06 22:24 수정 : 2009.05.11 01:43

2008 베이징올림픽 남자육상 100m 결승전.

[매거진 esc 100호 특집 ‘덕후왕 선발대회’ 수상작]
100미터 육상 덕후, 베이징에서 올림픽 남자육상 100m 직접 관람의 꿈을 이루다

[덕후왕 선발대회 2등] 문수경

1988년, 나는 몇 달 전부터 9월24일 낮 1시30분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날은 9초83 세계기록 보유자 벤 존슨과 LA올림픽 4관왕 칼 루이스가 서울올림픽 남자 육상 100m에서 격돌하는 디데이였다.

27일 오전, 황급히 공항을 빠져나가던 벤 존슨의 굳은 얼굴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당시 스포츠 기자를 꿈꾸던 13살 소녀에겐 정말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그러나 세계신기록 수립에서 메달 박탈까지의 3일이 너무도 극적이었기에 나는 더욱 100m에 매료됐다. 그후 내 마음속에 꿈 하나가 살포시 자리잡았다. ‘언젠가 올림픽 남자 육상 100m를 직접 가서 보자’

그날 이후 메이저대회 육상 100m는 빼놓지 않고 봤다. 생중계가 있는 날이면 만사 제쳐 두고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웬만한 유명 선수 프로필과 기록 정도는 줄줄 꿰는 ‘육상 박사’가 됐다. 육상 100m는 인간이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는지 인간의 한계를 알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고개 한 번 돌리면 끝나는 10초 남짓한 시간에 인생의 하이라이트가 결정된다는 사실이 감동적이다.

하지만 육상 100m에 대한 애정을 발산할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육상이 비인기 종목이고, 육상대회도 적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육상 100m를 소재로 한 책은 꼬박꼬박 챙겨봤다. 책 속의 100m 러너들이 혼신의 역주를 한 뒤 초록색 잔디밭에 앉아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는 장면을 나는 특히 좋아한다.

2007년 8월에는 금쪽같은 여름휴가를 오사카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모조리 바쳤다. 당시 오사카는 40도에 가까운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아침부터 오후까지는 땡볕 속 관광을 하고, 밤에는 육상 경기가 열리던 나가이스타디움을 찾았다. 숙소에 도착하면 밤 12시. 다코야키로 늦은 저녁을 허겁지겁 먹곤 했다. 하지만 다양한 나라에서 온 관중들과 땀 뻘뻘 흘리며 함께 응원하던 기억이 정겹다.

2008년,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벼르고 별렀다. 그해 8월 베이징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시드니나 아테네는 비행기 삯이 비싸서 엄두도 못 냈지만 중국은 갈 만했다. 나는 1년 전부터 ‘올림픽 남자육상 100m 관람’ 계획을 짰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남자육상 100m 티켓을 마침내 구했다.

2008년 8월16일 밤 10시30분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 아사파 파월과 우사인 볼트가 격돌하는 남자육상 100m 결승전이 열렸다. 8명의 인간 탄환이 등장하자 9만명의 관중들은 일제히 기립했고, 연신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에 관중석은 반짝반짝 눈이 부셨다. 탕! 조용했던 경기장은 함성으로 뒤덮였고, 스타트라인 바로 앞에서 관전하던 나의 눈도 선수들을 쫓아 움직였다. 우사인 볼트 9초69 세계신기록. 인간 최초로 9초70 벽을 깨는 순간을 함께한 관중석의 함성은 그야말로 터질 듯했다.


세계신기록의 순간을 지켜본 것도 좋았지만 내 마음을 더 설레게 한 장면은 따로 있었다. 바로 베이징에선 드물게 청명한 날씨 속에 전세계에서 몰려든 9만명의 관중들이 자발적으로 3번씩이나 파도타기를 하는 모습이었다. 그때의 짜릿함은 정말 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88년 서울올림픽 뒤 가슴속에 간직해왔던 ‘올림픽 남자육상 100m 직접 관람’이라는 소박한 꿈을 20년 만에 이룬 것이 가장 뿌듯했다. 내 마음은 벌써 2011년 대구 세계육상대회로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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