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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 먹었는데 부끄러운 이 감정은 뭐지? 일러스트레이션 김윤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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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100호 특집 ‘덕후왕 선발대회’ 수상작]
철없는 게임 덕후의 교생실습기
[덕후왕 선발대회 2등] 전철희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게임이다,라고 말한다면 확실히 과장이겠지만 스트리트 파이터2를 접한 6살 이래 20년을 게임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왔다. 게임을 실행하기 위해 컴퓨터를 배우고, 크로노 트리거 배경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피아노를 배우고, 게임기를 사기 위해 알바를 하며 살아왔다. 그렇다. 나는 파이널 판타지13 출시 이후 게임기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 미카미 신지가 이후에 어떤 게임을 낼지 따위를 고민하며 사는 ‘게임 덕후’다. 이 글은 그런 게임 덕후가, 또한 사범대 학생인 내가 중학교 2학년 교생을 간 4월에 대한 기록이다. 1. 만남 교생을 시작한 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매일 그랬듯, 그날도 나는 학교 앞 오락실에서 KOF라는 격투게임을 하고 있었다. 4연승인가 하고 있었을 때, 등 뒤에서 “선생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내가 가르치는 반의 남학생 4명이 서 있었다. 나는 교생이 오락실을 간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 철면피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만으로 너희는 무슨 게임을 하냐고 물어봤다. 학생들은 철권을 한다고 했다. 사제가 오락실에서 함께 할 말이 뭐가 있겠는가? 곧 우리는 함께 철권을 시작했다. 참고로 말하면 당시 나는 철권을 그렇게 잘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학생들은 실력이 나보다 더 떨어졌다. 대전 결과는 깔끔한 나의 완승이었다. 그날 이후, 나와 학생들은 매일 4시20분에 그 오락실에서 만나서 철권을 했다.
2. 굴욕 나의 완승 전적이 깨지지 않은 채 1주일쯤 지났을 때 일이다. 4명의 학생들이 낯선 친구를 한 명 데리고 왔다. 옆 반의 친구인 그는 학교에서 철권을 ‘짱’(제일) 잘하는 친구라고 했다. 편의상 그 친구 이름을 짱이라고 쓰겠다. 나는 짱과 가벼운 인사 후 바로 철권을 붙었다. ……. ‘짱’은 이름값을 했다. 4전 4패, 4·29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의 패배에 버금가는 대패였다. 3. 설욕을 위해 사실 학생에게 철권을 졌다는 것이 자존심 상할 일은 아니다. 교생으로서 부끄러울 만한 일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완승이 더 부끄러운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날의 처절한 전적은 20년 게임 덕후로서의 나의 자존심과 승부욕을 불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게임 덕후로서 어떻게 게임에 지고 분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음속으로 설욕전을 결의한 채, 나는 귀갓길에 PSP용 철권을 샀다. 이후 난 죽어라고 철권만 하며 2주를 보냈다. 명색이 교생 ‘선생님’인데 학생을 이기려고 너무 노력한 티가 나면 쪽팔릴 것 같아서 학교 앞 오락실은 가지도 못하고, PSP로 하루에 5시간 넘게 철권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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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격투 게임 ‘철권'에 한창 빠져있는 전철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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