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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5.06 22:38 수정 : 2009.05.09 13:35

일러스트레이션 김윤재

[매거진 esc 100호 특집 ‘덕후왕 선발대회’ 수상작]
지도에 미친 사나이, 공사판에서 진짜 고수를 만나다





[덕후왕 선발대회 1등] 김수경

잡풀들 사이로 희미하게 쏟아지는 어스름이 하루의 마감을 알리는 전북 고창의 들녘 한켠. 어깨 길이만 한 막대로 그린 세계지도를 어둠에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한 소년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가난한 풍촌댁의 아들내미였다. 1979년 11월2일 음력 태생인 그는 어찌된 영문인지 친구들과 함께 학교를 다닐 수 없었다. 출생신고 착오로 초등학교 재수를 해야 하는 억울한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먼지로 뒤덮여 한쪽에 처박혀 있던 사회과부도! 학생들 사이에 계륵이라 불리는 그 책을 미친 듯이 독파하기 시작했으니, 그때 나이 8세. 학교 갈 줄 알고 배워둔 한글이 요긴하게 쓰일 줄 알았을까?

한국 각 지명을 모조리 외워버리더니 부록에 달린 인구며 강의 길이를 외워갔다. 예로 당시 압록강은 790㎞로 독보적인 1위였고, 한강은 514㎞로 3위, 낙동강은 525㎞로 2위였다. 최근 자료에 의하면 낙동강은 506㎞고 한강은 481㎞로 약간 변화가 있지만.

움직임이 드물었던 어린 소년에게 지도는 담대한 희망이었다. 머릿속으로 전국을 일주했으며 세계를 날았다. 초등학교 사회과부도에 만족할 수는 없었다. 창고를 뒤져 나이 차가 10년 이상 나는 형과 큰누나의 중·고교 지리부도를 발견해 지도의 변동 사항을 보는 게 엄청난 재미였다. 경기도 시흥군이 안양과 과천, 안산(물론 화성군 반월의 일부와 합쳐져) 등으로 분화 발전한 것은 시차에 따른 단계적 지리부도의 습득이 아니었으면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과 재미는 같이 갈 수 없음을 금세 알게 됐다. 유럽의 스칸디나비아반도를 여행하면서 밥을 먹던 차 “니가 거기 다 갈래? 밥이나 먹어”라는 아버지의 핀잔은 두고두고 마음의 응어리가 되었다. 지도의 암독(暗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방과후 담배 밭고랑에서 일을 도우며 숨어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지도가 밥 먹여 주지 못하는 것을 잘 알게 된 지 수년이 지났다. 하지만 지도에 대한 오만은 그칠 줄 몰랐다. 그런 그에게 일침을 놓는 사람이 있었으니 고수를 만난 곳은 상아탑이 아닌 땀 냄새 나는 일터였다. 고수와의 조우를 실감나게 써둔 그의 일기를 들춰보자.


2002년 6월 12일


세계 각국의 지리책은 물론 1970년대 사회과부도, 지리부도 등을 소장하고 있는 김수경씨.
이런 곳에서 고수를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제대 후 일주일 만의 일이었다. 약수인력. 6시30분부터 9시까지 기다렸는데 연락은 오지 않았다. 오랜만에 몸 좀 풀려고 했던 난 헛걸음질칠 뻔했다. 그때 찾는 이가 있었으니 만남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하수는 고수를 몰라보나 보다. 난 그가 그냥 후암동 ㅈ빌라 경비아저씨인 줄 알았다.

벽돌과 자갈 쓰레기 나르는 일이었다. 66계단을 300번 정도 왔다 갔다 했을까. 다리가 풀릴 때쯤 아저씨, 아니 고수가 좀 쉬면서 하란다. 앉아 있는데 집이 어디냐 묻는다. 아무 생각 없이 고창이라고 대답했더니 고창이 다 네 집이냐는 거다. 고창이라고 해도 고추장이 유명하냐는 둥 전남 고창이냐는 둥 헛다리 짚는 사람들을 본 나로서는 기초단체장을 선출하는 군 단위의 행정구역 정도 얘기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모르더라도 실망 같은 건 하지 말자고 생각했는데… 다 네 집이냐는 말은 무엇인가?

너무 당황해서 고창 해리라고 했더니 저수지 큰 것이 있다는 둥 서울까지는 296킬로라는 둥(이것은 정확하다) 고창에 대해서 한없이 늘어놓는 것이다.(고수의 고향은 경기 화성이었다.) 이것이 내가 본 지리 고수의 첫 모습이었다. 옆에 있던 잡부 아저씨가 부산까지는 몇 킬로냐고 물으니 428킬로란다. 그러면서 전국에 있는 면소재지까지 전부 파악하고 있다 했다.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난 고작 구, 읍 단위까지밖에 모르는데 2000개가 넘는 면소재지를 알고 있다니 놀라고 놀라고 또 놀랐다.

난 자만에 빠져 있었다. 지리를 나보다 더 아는 사람은 없다고 자부했다. 대학에 오면서 수련을 게을리하기 시작했고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지리적 요인을 업그레이드하지 못했다. 물이 고이면 썩는다. 이제는 알고 있었던 것까지 까먹게 되었다. 키리바시의 수도가 어디더라? 그러면서도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다. 한마디로 난 고수가 아니었다. 고수는 항상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신독의 자세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고수는 정확했다. 난 새발의 피가 아니라 이발의 피도 안 되었다. 고수는 나를 김군이라 했다. 김군아? 예에 고수!!!! 고수에게 지리지도(지리의 도)를 받으려면 사소한 일부터 잘해야 했다. 시키지도 않은 계단 청소며 오버액션! 난 그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고수는 쉽게 도를 도라 말하지 않았다. 단지 “김군아, 자갈 두포 가져와라” 등의 말만 되풀이할 뿐. 그래도 난 실망하지 않았다. 머털이도 처음에는 온갖 잡일을 하지 않았는가? 돈오점수라고 잡일을 하다 보면 그 험난하다던 지리지도를 얻을 수 있을지. 난 이 끄나풀을 놓지 않으련다. 전화번호도 받아왔다. 고수, 고수, 고수….

ps. 고수는 박통 시절 보안사에서 근무했단다. 박통이 방문하는 곳에 항상 그가 사전 답사를 했다는 것이다. 박정희와 발걸음이 비슷한 사람을 써서 걸어보게 해 몇분 몇초에 어디 앞을 지날 것이란 걸 예측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취미와 생업의 차이인가? 연유야 어떻든 앞으로 남은 숙제가 드러났다. 그 후 1999년에 머물렀던 지식을 ‘2009년 현재’로 돌려놓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 시작됐고 연일 의문난 지역을 토닥거렸다.

콜롬보회의로 유명한 스리랑카! 1985년에 스리자야와르데네프라코테라는 세계에서 가장 긴 수도명을 가진 인구 11만의 지역으로 천도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콜롬보로 잘못 알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스리자야와르데네프라코테의 황혼을 꼭 가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백화점에서 의류 먼지를 마시며 연명하고 있지만 아직 그는 스리자야와르데네프라코테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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