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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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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쏙]
송강호가 벗었다. 윗도리가 아니다. 아랫도리다. 인터넷이 난리가 났다. 섹시한 이미지로 먹고사는 청춘 스타의 노출도 아니건만 전국민의 눈이 쏠렸다. 박찬욱 감독의 미학에 대한 논의는 밀려나고 ‘송강호의 성기 노출’ 화제가 끝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노출 마케팅 덕분에 영화 <박쥐>가 성공했다고 믿는 건 재미없다. 누가 송강호의 노출을 보겠다는 열망만으로 극장에 가겠는가. 해당 장면은 송강호의 설명처럼 “신부 상현이 자신의 가장 치욕적이고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임으로써 잘못된 구원과 신앙을 갖고 있는 신도들에게 그동안의 잘못을 일깨워주는 장면”이다. 팔아먹을 만큼 섹시하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박쥐>의 노출이 미학적 선택이건 마케팅 수단이건 상관없다. <박쥐>의 확실한 공로는 한국 영화의 오랜 금기 하나를 완벽하게 깨뜨렸다는 데 있다. ‘내시’도 ‘애마부인’도 못 비켜간 외설시비‘박쥐’ 성기노출 처음도 아닌데 웬 호들갑?
송강호이니까…노출의 한계를 깼으니까… <박쥐>의 성기 노출이 화제이긴 하지만 실은 한국 영화 최초는 아니다. 이미 재중동포 장률 감독의 <중경>에서 남녀의 성기가 꽤나 오래 화면에 등장한 바 있다. <중경>은 중국 국적 감독이 중국 배우와 작업한 영화지만 한국 영화사가 제작비를 투자한 한국 영화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이 영화에 제한상영가가 아니라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매겼다.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 이지상의 <둘 하나 섹스>, 박진표의 <죽어도 좋아>가 노출 장면을 삭제하거나 뿌옇게 처리한 뒤에야 극장에 걸릴 수 있었던 게 겨우 몇 년 전이다. 딱딱한 영등위도 조금 덜 딱딱해졌다는 소리다. 영등위는 <박쥐>에 대해 “성관계 도중 성기 노출이 아니라 작품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장면이라 별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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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영화 ‘춘몽’, ‘애마부인’, ‘죽어도 좋아’,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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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여배우들의 몸을 탐하던 70년대 호스티스 영화에서도 가슴 노출은 금기였다. 본격적으로 한국 영화의 노출 수위가 높아진 건 80년대부터다. 사회파 에로를 주창하던 선배들과 달리 80년대 에로영화들은 주제 의식에 관계없이 여배우를 벗기는 데 주력했다. 그리고 마침내 정인엽의 <애마부인>(1982)에서 처음으로 여성의 가슴이 스크린에 등장했다. 주인공 안소영이 올누드로 말을 타는 모습을 망원으로 잡은 장면이었다.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이 비호한 노출이지만 분명 한국 영화 금기의 파괴였다. 한 번 깨진 금기는 돌이킬 수 없는 법이다. 90년대 한국 영화 르네상스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배우의 노출은 이제 외설 논쟁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에 관한 논쟁으로 발전했다. 장선우 감독은 <너에게 나를 보낸다>와 <나쁜 영화>로 끊임없이 검열 논쟁에 시달리다가 2000년 작 <거짓말>로 일대 논란을 불렀다. <거짓말>은 오랜 논쟁 끝에 검열로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상영됐고, 성기와 체모 노출 금기를 화두로 떠올렸다. 다시 <박쥐>를 이야기해보자. 노출과 금기의 한국 영화사에서 <박쥐>가 중요한 건 성기 노출의 금기를 타파했기 때문이 아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전례는 얼마든지 있다. 오히려 <박쥐>는 지금 가장 대중적인 최고 스타의 성기를 드러냄으로써 대중과 영화계가 인식하는 노출의 한계를 파괴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박쥐>로부터 한국 영화 금기의 역사는 다시 쓰여진다. 성기 노출이 성행위와 관련된 것이냐가 앞으로의 문제다. 김도훈 <씨네21> 기자 groove@cine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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