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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의 싱글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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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esc] 김도훈의 싱글 라이프
오랜만에 홍대를 산책했다. 입이 딱 벌어졌다. 카페가 스페인독감처럼 번지고 있었다. 같이 홍대를 산책하던 지인에게 말했다. “대체 이 동네 사람들은 물만 먹고 사는 건가?” 6년 전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얻었던 시원찮은 원룸 근처로 발길을 옮긴 순간 나는 거의 기절할 것 같았다. 원룸과 다세대 주택만 가득하던 동네는 카페와 디저트 카페로 점령당했다. 파자마를 입은 채 빨랫감을 한가득 양손에 들고 세탁소를 향해 걸어다니던 길은 이제 카페에서 내놓은 파티오가 앙증맞게 수놓아져 있었다. 한껏 차려입은 20대 남녀들이 커피를 홀짝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이사를 간 게 다행이지. 계속 그 동네에 살았다면 집 앞 담뱃가게에 갈 때도 가장 좋은 셔츠를 꺼내 입고 거울을 확인해야 했을 테니까 말이다. 카페 바이러스의 범람이 홍대만의 특징인 건 아니다. 조금 뜬다 싶은 동네들에는 어김없이 새로운 카페가 열린다. 신사동 가로수길은 물론이고 통의동과 효자동과 부암동에도 매달 새로운 카페가 매달 개업을 한다.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 됐다. 하루가 멀다 하고 땅에서 솟아나는 카페의 주인들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래서 새로운 동네의 새로운 카페에 들어설 때마다 사장의 얼굴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괜한 짓이었다. 카페의 주인들은 대부분 30대와 40대였다. 심지어 20대 카페 사장을 만났을 땐 가슴속의 심지가 타들어 가는 심정이 됐다. 물론이다. 부러워서 그렇다. 구수하게 커피를 내리고 우아하게 케이크를 세팅하면서 입에 풀칠을 할 수 있는 그들의 처지에 질투가 나서 그렇다. 밤새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굴렸다. 오피스텔 전세금을 빼서 절반은 싼 원룸을 구하고 절반은 창업 자금으로 써야지. 그러고도 모자라는 돈은 대출을 받아야겠어. 주택가 한적한 곳에 한 열평짜리 공간을 구하는 거야. 보증금 3천에 월세 150이면 충분하다잖아. 월 매출이 최소한 600만원은 나온다니 그 정도면 충분히 대출금은 갚아나갈 수 있어. 갑자기 예전에 만난 홍대 앞 비스트로 주인장의 말이 떠올랐다. 파리의 코르동 블루에서 디저트 코스를 밟은 그는 쥐꼬리만한 월급쟁이의 삶을 개탄하는 나에게 권했더랬다. “코르동 블루로 가세요. 마침 단것도 너무 좋아하신다면서요. 그럼 금방 배우실거예요.” 그래. 코르동 블루로 가자. 유학을 갔다 와서 아는 패션지 기자들에게 기사라도 써달라고 해야겠다. 인터뷰가 실리면 무심한 듯 시크하게 대답해야지. 너무 절박해 보이면 저렴해 보일지도 모르니까 그냥 “작업실이나 하나 열까 하다가 개업했어요.” 정도가 딱이야. 그러나 상수동 근처 카페 골목을 걷다가 나는 마음을 돌렸다. 오래전 두어번 간 적이 있는 카페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인테리어와 이름도 바뀌었고 메뉴도 달랐다. 사장도 바뀌었다. 망했을 것이다. 옛 사장은 우후죽순 생겨나는 새로운 카페들에 밀려 보증금만 겨우 챙긴 채 월급쟁이의 삶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나는 누군지 모르는 그의 처지를 동정했다. 그리고 평행우주 속 카페 주인인 내 미래를 함께 슬퍼했다. 김도훈 <씨네21> 기자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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