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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5.14 00:32 수정 : 2009.05.14 00:32

라인강 유람의 정점인 로맨틱 라인 구간에서 가장 유명하지만 가장 볼품이 없는 곳인 로렐라이 언덕.

[매거진 esc] 노중훈의 여행지 소문과 진실

프랑스는 와인, 러시아는 보드카, 일본 하면 사케가 자연스레 따라붙듯이 독일의 술은 역시 맥주다. 연간 맥주 소비량 세계 1위의 나라답게 독일에는 맥주의 종류가 실로 엄청나다. 6000여종에 이른다고 한다. 영화나 가요처럼 맥주의 인기 순위를 매기는 웹사이트가 있으며, 법적으로도 맥주의 질을 보장해 놓고 있다. 지방별로 특산 맥주가 따로 있는데, 지역 주민들의 자기 고장 맥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마을 밖 10㎞를 벗어난 맥주는 맥주가 아니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대낮부터 노천카페에 앉아 맥주를 물처럼 소비하는 독일 사람들의 모습은 흔하고 너른 일상의 풍경이다. 관대한 식성과 사나운 식탐 때문에 정교한 ‘맛 논평’은 불가하지만 개인적으로도 아일랜드, 체코와 더불어 독일의 맥주가 지금껏 가장 흡족했다.

맥주의 위세에 가려져 있긴 하지만 독일은 와인도 빼어나다. 가장 달콤한 와인으로 일컬어지는 아이스 와인의 원조가 바로 독일이다. 그런데 추운 날씨가 지속적으로 담보되지 못하는 까닭에 독일은 아이스 와인 제왕의 자리를 캐나다에 넘겨주고 말았다. 다행인 것은 가벼우면서도 섬세한 화이트 와인의 명성만큼은 여전히 우뚝하다는 점이다. 특히 라인가우(Rheingau) 지방의 것을 으뜸으로 치는데, 라인가우는 화이트 와인의 대표적인 포도 품종 중 하나인 리슬링의 고향이다. 500여년 전 첫선을 보인 이래로 지금도 전체 포도밭 면적의 80%를 리슬링이 오로지하고 있다. 독일 여행의 관문 노릇을 하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차로 70여분 거리에 있는 뤼데스하임(Ruedesheim) 역시 리슬링으로 만든, 시원하고 달콤한 맛의 화이트 와인이 지역 특산물로 융숭하게 대접받는 곳이다. 마을 뒤 완만한 언덕을 따라 융단 같은 포도밭이 펼쳐져 있는데,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까지 오르는 도중 맞닥뜨리는 풍광은 오랜 잔상으로 남을 만큼 특출하다.

뤼데스하임은 라인강 유람의 하이라이트인 ‘로맨틱 라인’이 출발하는 곳이기도 하다. 보통 라인강 유람은 마인츠와 쾰른을 시와 종으로 삼는다. 총길이 185㎞. 하지만 가장 수려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은 뤼데스하임에서 코블렌츠까지의 70㎞ 구간이다. 크루즈를 타고 가다 보면 바드름하게 흘러내린 산등성이를 초록으로 물들인 포도밭에 햇볕이 자글거리고 청포도들이 멀리서 침샘을 자극한다. ‘로맨틱’의 또다른 주인공은 강기슭의 고성들이다. 좁은 낭떠러지 위에 예술적으로 서 있는 성들이 수시로 갈마든다.

로맨틱 라인의 치명적인 약점은 그 유명한 로렐라이 언덕이다. 학창 시절 음악 교과서에도 나오는 로렐라이는 인어공주 못지않게 우리에게 친숙하다. 하지만 로렐라이 언덕 앞에서 기대감과 실망감은 정확히 비례한다. 유람선이 언덕 앞을 지날 때 “이곳이 로렐라이입니다”라는 설명과 로렐라이 멜로디가 나오지 않는다면 “설마 이곳일까” 싶을 정도로 별다른 특징이 없다. 라인강을 항해하는 뱃사람들이 요정의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도취되어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배가 암초에 부딪쳐 난파한다는 전설이 헐겁게 느껴질 뿐이다.

노중훈 여행 칼럼니스트 superwin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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