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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5.20 18:41 수정 : 2009.05.20 18:41

긴 것이 아름답다. 오영욱 제공

[매거진 esc] 오기사의 도시와 건축

기차는 아름답다.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차에는 보통 추억과 낭만이 서려 있기 때문에 기차는 우리에게 향수를 일으킨다. 기차여행은 그래서 각별한 느낌을 주곤 한다. 그런데 나는 기차의 길이 때문에 기차가 아름다워 보인다. 버스가 건네주지 못하는 길다는 느낌, 여러 칸에 사람들이 나눠 타고 줄줄이 한 방향으로 가야만 하는 궤도의 질서, 그리고 반복의 미학. 독재자의 생명줄처럼 길어서 아름답지 않은 경우도 있긴 하지만 긴 것은 대개 아름답거나 섹시하다. 보통의 기차는 그런 매력을 지니고 있다. 나는 그래서 기차가 참 좋다.

생뚱맞지만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의 정전이라는 건물도 길다. 매우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길이는 보다 확연히 인지된다. 그리고 다소 비약해서 말하자면, 종묘의 정전도 길기 때문에 아름답다.

물론 세상에는 긴 건물들이 많다. 학교 건물은 으레 길다. 옛날에 지은 아파트들 중에는 한 층에 열 집 이상 자리를 잡아, 꽤 기다란 모양을 한 것들이 좀 있었다. 하지만 아파트보다야 종묘의 정전이 아름답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절대적인 길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길어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그 길이를 가치 있게 만든다.

기차는 당연히 길 수밖에 없다. 기관차가 있고 정해진 선로를 따라 움직여야 한다. 기관차는 힘이 좋기 때문에 여러 대를 끌 수 있고, 그래서 한 번에 여러 대가 움직이는 것이 효율이 좋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긴 객차들을 줄줄이 붙여 더 길게 만든다. 애초 길이가 문제가 아니었지만 기능적으로 조합하다 보니 매우 길어진 것이다. 스무 칸 정도의 객차가 연결되어 있는 모습은 꽤 멋지다.

오기사의 도시와 건축
종묘 정전의 경우는 시간이 지나다 보니 길어진 경우다. 왕실의 제사 공간이라는 특성상 처음에는 지금 길이의 반도 안 되는 건물로 지었다고 한다. 조선 초기에는 일곱 칸짜리 건물이었고, 임진왜란 이후 다시 지을 때는 열한 칸짜리 건물이었다. 하지만 조선이 수많은 위기에도 불구하고 500년의 역사를 이어 오며 훌륭한 왕을 많이 배출하자 선왕들의 위패를 모실 자리가 부족해졌다. 그래서 종묘 정전은 공간이 필요할 때마다 양옆으로 한칸 한칸 규모를 늘려 갔다. 그래서 지금은 열아홉 칸 건물이다. 아직도 조선시대라면 종묘 정전은 스물한 칸짜리 건물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서울에서 가장 멋진 건물을 말하라고 하면 나는 보통 종묘의 정전이라고 말한다. 다른 현대 건축물을 제치고 종묘를 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길기 때문이다. 나는 긴 건물이 좋다. 총 101미터라고 하는데 그 수치가 주는 느낌보다 실제의 경험은 더욱 장대하다. 무엇보다도 그 길이에 내재되어 있는 시간의 흔적은 어떤 현대 구축물도 따라올 수 없는 묵직한 경지다.

오영욱/건축가·오기사디자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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