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썰물 때 바다 한가운데서 모습을 드러내는 이작도의 풀등. 동서 2.5㎞, 남북 1㎞에 이르는 모래평원이다.
|
[매거진 esc] 독서광 노동효의 썸플레이스 <섬을 걷다>와 이작도의 풀등
봄날, 이작도로 건너갔다. 인천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탔다. ‘대한민국의 모든 유인도를 걷겠다’는 작정으로 보길도를 나와 벌써 100여개 섬을 순례한 강제윤 시인과 길동무들이 함께 떠난 여행길이었다. 서해대교 아래를 지나 뱃길로 1시간, 영화 <섬마을 선생님>의 로케이션 장소이기도 했던 대이작도에 도착했다. 강제윤 시인을 앞에 세우고 해안도로, 숲길, 산길을 걸었다. 자동차 한 대 오가지 않는 길이었다. “자동차의 방해 없이 걸음에 몸을 맡기고 온전히 걸을 때 생각은 자유를 얻는다. 애쓰지 않아도 자연히 ‘한 생각’이 오고 ‘한 생각’이 간다. 온전한 걷기란 단지 다리 근육의 운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잠들어 있는 생각을 깨우고 생각의 폭을 넓히는 정신의 운동이기도 하다.”-<섬을 걷다> 중 대이작도의 최고봉 부아산은 해발 159m에 불과하지만 정상에 서면 승봉도, 자월도, 소야도, 덕적도, 굴업도, 백아도 등 주변 섬들이 내려다보인다. 한때 해적들이 많아 이적도라 불리기도 했다는 이작도는 아름다운 해변과 산과 숲을 고루 간직한 섬. 한적한 길들이 해변과 산과 숲을 이어주고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한 뒤, 해 저문 해변으로 내려갔다. 강제윤 시인과 김태형 영화감독이 <섬을 걷다> 중 ‘이작도’와 ‘자월도’ 편을 낭독하고, 박강수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이상엽 사진가가 사진을 찍었다. “남한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지 않는 한 면도 휴전선으로 가로막혀 있으니 섬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리고 대륙도 크기만 다를 뿐 결국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이지요. 그리고 우리 좀더 멀리 나가 봅시다. 우주에서 바라보면 지구도 캄캄한 어둠 속에 떠 있는 별, 아니 섬 아닙니까? 어떻게 보면 사람도, 대륙도, 지구도 모두 섬이지요.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섬에 대해 좀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이일훈 건축가가 말했다. 그러고 보면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도 섬이고, 홍길동이 선남선녀들을 데리고 떠난 ‘율도국’도 섬이고, 허생이 문자 모르는 이들만 남기고 떠나온 ‘빈 섬’도 섬이다. 인류는 우주 한가운데 떠 있는 푸른 섬, 지구에서 또다른 섬을 꿈꾸며 한 생을 사는구나. 아침 일찍 썰물의 바다로 나갔다. 이작도의 신기루, 풀등에 오르기 위해서였다. 밀물 때는 보이지 않다가 썰물 때 바다 한가운데에서 솟아올라 모습을 드러내는 동서 2.5킬로미터, 남북 1킬로미터의 모래 평원. 발을 내리니 마치 공상과학(SF) 영화 속의 한 장면 속으로 들어온 듯하다. 환호성을 지르며 풀등 위를 걷는데 강제윤 시인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풀등 넓이가 74제곱킬로미터인데 정부는 55제곱킬로미터만 ‘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했어. 나머지 19제곱킬로미터의 모래밭은 토건업자들에 의해 언제 사라질지 몰라. 모래채취가 재개되고 24시간 바닷속에 유압호스를 넣어 모래를 빨아들이면 허가 지역뿐만 아니라 인근 풀등의 모래 또한 유출될 것은 빤한 일이지.” “섬이 망가지는 것은 태풍이나 풍랑 때문이 아니다. 탐욕 때문이다. 수억 년 온갖 풍파를 견딘 섬을 인간은 하루아침에 파괴한다. 인간의 탐욕이 허리케인이나 쓰나미보다 무섭다.” -<섬을 걷다> 중 노동효 여행작가·<길 위의 칸타빌레> 저자 newcross@paran.com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