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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5.21 19:46 수정 : 2009.05.22 08:53

한 포털사이트 위성사진으로 본 옛돌박물관 공사 현장. 산허리를 깎아 하얗게 보이는 박물관 터가 푸른 숲과 대비를 이루고 있다. 그래픽 홍종길 기자 jonggeel@hani.co.kr

[뉴스 쏙]

문화재+그린벨트+군사보호구역 묶인 땅
‘친구 이명박’ 서울시장때 각종 규제 풀려

산허리·나무 베고 대규모 돌박물관 건립
개발 허용된 주변 땅도 고가에 팔아 넘겨

서울 북악산은 그 일대가 국가 지정 문화재다.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주산으로 서울 성곽 등의 문화재가 있고, 조선의 정궁인 경북궁의 후원이라는 문화재적 가치 때문에 문화재로 지정됐다. 그런데 이 문화재인 북악산 자락 서울 성북구 성북동 330-1번지 일대에선 요즘 산허리를 깎아내는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1만2000㎡ 규모로 들어서는 세중문화재단의 세중옛돌박물관 공사가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됐다. 세중문화재단 대표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20년 넘게 모아왔다는 문인석, 장승, 석등 등 전통 석조물들을 전시하는 사립 박물관을 짓고 있는 것이다. 성북동 천 회장의 자택 부근에 짓는 옛돌박물관은 지하 3층 지상, 1층 규모로, 올해 말 완공 예정이다. 문화재 보호구역에다 그린벨트, 군사시설보호구역 등 규제가 겹겹으로 겹치는 이곳의 산허리를 잘라내고 어떻게 박물관이 들어설 수 있었을까? 세중문화재단은 박물관 등 공공시설을 그린벨트에 지을 수 있게 법규가 바뀐 뒤 2001년부터 인허가 관청의 문을 두드려, 2009년 1월 최종 사업허가를 얻었다. 토지 매입 후 25년 만이며 인허가를 신청한 지 9년이나 걸렸다. 천 회장은 또 대지였지만 자연경관지역으로 주택 신축이 불허됐던 땅의 일부도 서울시 조례 변경으로 매각할 수 있게 돼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거뒀다. 천 회장의 사업 수완과 재물 운이 어떤지 성북동 땅 운영에서도 잘 볼 수 있다. 천 회장은 요즘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박연차 로비 의혹 사건에 관련된 ‘현 정권의 실세 기업인’이란 사실 때문이다. 성북동 옛돌박물관에 세인의 관심이 더 쏠리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천 회장이 대표로 있는 세중문화재단이 성북동 자택 부근에 새로 짓는 옛돌박물관의 우여곡절 추진 과정을 살펴봤다.

북악산 암반을 깎아 들어서고 있는 돌박물관

북악산 암반을 깎아 들어서고 있는 돌박물관
천 회장은 이 땅을 1984년 9월에 대한교육보험주식회사로부터 매입했다. 2만6324㎡였던 땅은 1982년 절반 정도가 공원으로 지정됐고 절반은 단독주택을 지을 수 있는 1종 대지로 지정됐다. 천 회장은 공원으로 지정된 330-1번지의 소유권을 1986년 9월 세중문화재단으로 이전했다. 공원이 아닌 대지로 지정된 절반의 땅은 330-543번지 등으로 분할됐는데, 543번지는 나중에 330-600, 601, 602로 쪼개졌다. 하지만 집을 지을 수 있는 대지여도 북악산 공원을 옆에 끼고 있는 자연경관지역이어서 주택 신축은 최근까지 불허되어 왔다. 그래서 330-1번지 등 공원 지역 땅값은 서울 최고의 부촌인 성북동에 걸맞지 않게 평당 22만원(2008년 공시지가 기준)에 불과했다.

세중문화재단은 2000년께 그린벨트에 공원, 박물관이 들어설 경우 허가가 가능하도록 규정이 완화되자 성북동 330-1번지 등에 박물관을 건립하는 계획을 세워 2001년부터 서울시에 공원 심의를 요청했다. 공교롭게 천 회장의 절친한 친구인 이명박 대통령이 2002년 6월 서울시장에 당선되었고, 세중문화재단의 박물관 건립계획은 그해 12월 전시장을 지하로 짓고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는 조건으로 승인됐다.

석달 뒤인 2003년 3월 서울시는 이 지역을 박물관 터 옆에 있는 절 이름을 따 정법사지구로 지정했다. 서울시는 이 지역 7800㎡에 돌박물관과 야외 전시장을 만든다고 발표했다. 당시 서울시는 정법사지구의 핵심인 이 박물관을 민자유치를 통해서 짓겠다고 덧붙였다.

이명박 서울시장 당선 뒤 개발 계획 허가

이처럼 공원지구로 지정되면 개발제한구역과 군사보호구역 등의 각종 규제가 좀더 쉽게 풀린다. 서울시 푸른도시국 관계자는 “시민을 위한 공원지구로 지정되었으므로 군과 국토해양부의 각종 규제가 풀리고 건설 행위를 좀더 쉽게 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미 2000년 경기도 용인에 1만8000㎡ 규모의 옛돌박물관을 선보였던 천 회장은 자택이 있는 성북동에 비슷한 규모의 박물관을 지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시의 허가를 받은 박물관 건설계획은 심의 과정에서 꼬였다. 서울시 공원조성계획을 심의·결정하는 도시공원위원회에서 반대했기 때문이다. 산림이 잘 보존된 자연경관지역인데다 경사가 30도에 이르는 이곳에 박물관이 들어서는 것이 자연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당시 도시공원위원회 위원이었던 인사는 “누구 땅인지는 몰랐지만 산 중턱에 박물관을 짓는 것은 과욕이라는 게 위원들의 중론이었다. 전시실 내부 구조도 박물관보다는 사택을 연상케 했다”고 기억했다.

결국 도시공원위원회는 2006년 5월 지하 4층, 지상 1층 연면적 2433㎡로 산의 상당 부분을 깎는 세중문화재단의 계획안을 반려시켰다. 대신 도시공원위원회는 능선 훼손을 최소화하도록 옛돌박물관을 연구동과 전시동으로 나눠 짓게 했다.

그러나 세중문화재단은 이 결정 20여일 만인 5월 말 연구동과 전시동을 하나의 동으로 합친 수정 계획안을 다시 위원회에 접수시켜 한달 뒤인 6월 말 조건부 허가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가결된 안은 연면적 2430㎡로 최초안과 대동소이했다. 2개 동으로 만들면 전시 공간을 제대로 만들 수 없다는 세중문화재단 주장이 불과 20일 만에 다시 받아들여진 것이다.

심사 때마다 자연훼손 지적받아

모든 행정절차를 마무리지었다고 여겼던 세중문화재단의 박물관 건립은 또 한번 복병을 만났다. 옛돌박물관 터가 국가 문화재로 지정된 것이다. 문화재청은 2007년 3월 북악산 일대를 중요 문화재로 지정했고, 옛돌박물관 예정 터인 성북동 330-1번지 등도 백악산(북악산의 옛이름) 문화유적으로 편입됐다. 문화재 지역으로 편입되면 문화재에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건설행위에 대한 현상변경 허가를 얻어야 한다.

문화재청은 서울시 도시공원위원회가 결정한 세중문화재단의 옛돌박물관 건설계획을 반려했다. 당시 현상변경 심사를 했던 문화재청 관계자는 “박물관이 북악산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있어 통과가 보류됐다”고 말했다. 당시 위원들은 이곳에 박물관을 짓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성북동 현장을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문화재청은 2007년 7월 터를 파고 박물관을 지은 뒤 다시 흙을 덮고 나무를 심어 산의 능선을 살리겠다는 세중문화재단의 수정안을 조건부 가결했다. 북악산을 깎아 짓는 세중문화재단의 옛돌박물관은 이처럼 심의 과정 곳곳에서 자연 파괴가 우려된다는 지적을 받았다.

결국 성북구청은 지난해 11월 사업계획을 인가했고, 세중문화재단은 문화재인 북악산을 깎는 공사를 시작했다. 성북구청이 최종 고시한 북악도심공원의 면적은 1만2040㎡로 애초 서울시가 발표했던 7800㎡의 1.5배 규모로 커졌다. 세중문화재단은 그린벨트 훼손 대가로 개발훼손부담금 4억6738만원을 국토해양부에 냈다.

문화재청은 옛돌박물관의 현상변경 허가를 내주면서 자연지형 훼손을 최소화하고 중요 수종은 보존하거나 재활용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러나 현재 공사가 진행되는 성북동 330-1번지 현장을 가보면 산허리를 깎아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공사에 민원과 관련 제보가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초기 공사에서 산을 깎지만 건물 지붕과 벽에 흙을 쌓고 나무를 심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세중문화재단 관계자는 “9년에 걸쳐 허가를 받는 과정에 어떤 위법이나 탈법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일 때 허가가 난 것에 대해서도 “서울시장이 밀어준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린벨트에 박물관을 짓는 게 이렇게 어려운 줄 알았다면 시작도 안 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 5월부터 그린벨트에 박물관 불허키로

20여년 동안 숲이었던 박물관 터의 땅값은 평당 20만원에 불과했지만 개발 가능한 바로 옆 번지의 땅값이 평당 700만원대인 점을 고려하면, 박물관을 짓는 것이긴 해도 세중문화재단이 그린벨트 개발로 얻은 재산상 이익은 적지 않은 규모로 추정된다. 이와 함께 천 회장은 박물관을 지은 땅 말고 대지로 분류됐던 나머지 땅들을 지난해 상당 부분 매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천 회장 소유인 이 땅들은 그린벨트는 아니더라도 자연경관지역 및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묶여 있어 개발이 어려웠던 땅이다. 천 회장이 매입 20여년 만에 판 이 대지엔 대사관저 등 고급주택이 들어섰다.

자연경관지구였던 이 땅에 주택이 들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서울시가 2008년 공원지역과 인접한 자연경관지역에서의 주택 신축 규제를 완화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곳 땅값은 평당 700만~800만원에 육박한다. 실제 천 회장은 330-1번지에서 쪼개져 나온 330-600, 602번지를 2008년 말 각각 11억5000만원, 12억원에 매도했다.

최근 국토해양부는 개발제한구역 내에 박물관 등 12개 시설의 입지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국토해양부의 이런 결정은 사설 박물관을 비롯해 공공청사, 과학관, 체육시설 등으로 인한 그린벨트 훼손이 심각하다고 보고 앞으로 더는 건립을 허가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2001년부터 시작된 세중문화재단의 박물관 건립은 기가 막힌 타이밍에 이뤄진 셈이다.

권은중 기자 detail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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