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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의 싱글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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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도훈의 싱글 라이프
칸영화제에 왔다. 벌써 4년째다. 칸영화제 독신남녀 클럽의 회동도 네번째다. 칸영화제 독신남녀 클럽이 뭐냐고? 아직 결혼하지 못한 전세계의 독신남녀 친구들이 지중해의 햇살 아래서 홍합과 굴을 까먹으며 신세타령을 하는 비공개 모임이다. 뉴욕에서 프리랜서 기자로 살아가는 일본 여기자, 세계 곳곳을 누비며 장사 안되는 영화들을 사는 일본인 바이어, 중국인 영화사 홍보요원 등 구성원도 다양하다. 이 하릴없는 인간들이 늘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건 아니다. 칸영화제는 한국 노동법의 한계를 뛰어넘는 중노동의 현장이다. 그들은 종일 대여섯 편의 영화를 보고(그중 네댓 편은 폭탄이다), 수십 번의 미팅을 하고(대부분은 불발이다), 몇 줄의 기사를 쓴다(어떤 날은 밤새 써도 끝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올해 독신남녀 클럽의 회동은 무사히 성사됐다. 일인당 15유로, 팁과 음료를 합치면 일인당 3만원이 넘는 짭조름한 홍합을 까면서 노가리를 깠다. 갑자기 뉴욕에 사는 친구가 아이폰에 담긴 사진을 보여줬다. 고양이였다. “얼마 전에 뉴욕의 애완동물 보호소에서 고양이를 하나 입양했어”. 그러자 도쿄에 사는 친구가 휴대전화기의 사진을 꺼냈다. “나도 애완동물 보호소에서 입양한 늙은 고양이가 있는데. 늙은 할아버지 고양이야”. 나도 가방 속에 영화제 팸플릿과 뒤엉켜 있던 폴라로이드 사진을 꺼내며 소리질렀다. “세상에, 나도 길거리에서 따라오는 고양이를 입양했어!” 맙소사, 칸영화제 독신남녀 클럽의 멤버들 모두가 지난 1년 사이에 고양이를 데려다 키우기 시작했다. 나는 물었다. “다들 외로웠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다들 외로웠나보다. 하지만 숙소에 돌아와서 스스로 반문했다. 내가 외로워서 고양이를 데려왔던가? 그건 아니었다. 내 고양이는 길고양이였다. 사람을 보자마자 좋아 죽겠다고 소리를 빽빽 지르는 어딘가 조금 멍청한 고양이였다. 내가 외로워서 데려온 게 아니라 놈이 외로워 보여서 데려온 것이다. 게다가 놈을 집에 데려온 뒤 3일을 스트레스로 몸져누웠다. 도무지 책임질 만한 배포가 없어서다. 하지만 나는 고양이를 키우면서 진짜 성인의 책임감을 마침내 깨닫고, 또 배우기 시작했다. 요즘 내 하루는 고양이 똥을 치우는 것으로 시작된다. 구린 냄새가 나는 똥과 오줌을 모래에서 떠내면서 나는 놀란다. 이제 내 인생은 오로지 내 인생이 아니라는 사실에 놀라고, 그걸 이토록 쉽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에 놀란다. 매일매일 똥을 뜰 때마다 놀란다. 지난 8개월간 나는 고양이를 키운다는 사실을 부모님께 말하지 못했다. 〈esc〉의 열렬한 독자인 부모님은 이 기사를 읽는 순간 뒤로 넘어가실지도 모르겠다. 죄송해요. 저 고양이 키워요. 결혼도 하기 싫다고 발버둥치는 못난 아들은 고양이를 키우는 서른네살의 독신남이 됐습니다. 하지만 고양이 덕분에 저는 아침마다 똥도 치우고 밤마다 청소도 하는 깨끗한 청소남이자, 예전보다 외고도 훨씬 열심히 쓰는 훌륭한 노동자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얼마 전 이물질을 집어삼킨 고양이를 수술시키면서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아픈 새끼 들쳐업고 맨발로 뛰던 어머님 마음을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열심히 고양이 똥 치우며 잘 살아보겠습니다. 김도훈 씨네21 기자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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