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5.27 19:15
수정 : 2009.05.30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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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초기 교회 건축물로 알려진 아야소피아. 이스탄불 여행의 보편적인 출발지인 블루 모스크가 마주 보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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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수천년 역사 도시 전체 펼쳐진 터키 이스탄불 … 2010 유럽문화수도 정비 작업도 한창
이스탄불 여행은 시각이 아니라 청각에서 시작된다. 해 질 녘 도시 곳곳에 서 있는 이슬람 사원에서 예배 시간을 알리는 목소리 ‘아잔’이 울려퍼지며 도시 전체의 공기를 감쌀 때 마음 급한 여행자라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가장 아름다운 사진이나 흥미로운 기행문으로도 채울 수 없는 진짜 여행의 매력이 이스탄불에서는 이렇게 소리로 먼저 다가온다.
맥주와 이슬람, 아이팟과 히잡
청각적 체험은 풍경과 만나 그 낯선 매혹을 증폭시킨다. 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게 엄숙하고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사원들이라면 그 주변을 둘러싼 수많은 간판 중 가장 흔한 건 ‘에페스’(EFES)라는 터키 맥주 로고다. 도심 한가운데서 담배를 물고 아이폰을 가지고 노는 이십대 청춘들 옆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은 헝겊으로 휘감은 또래의 얼굴들이 지나간다. ‘동서양 문화의 만남’ ‘전통과 현대의 공존’이라는 상투어가 어찌할 도리 없이 떠오른다. 한 도시의 경계 안에 유럽과 아시아라는 거대한 두 대륙을 동시에 품고 있는 것부터 여행자들에게는 비현실적인 시공간의 도착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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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바자 외부에 위치한 조명 기념품점. 모자이크 장식이 화사한 조명등은 터키 특산품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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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여행 명소들이 모여 있는 유럽편은 이스탄불의 심장부인 갈라타 다리를 중심으로 구시가와 신시가로 갈린다. 다리 왼쪽 편의 구도심에는 술탄아흐멧 사원과 아야소피아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적지가 모여 있다. 비잔틴 시대에 세운 기독교 교회인 아야소피아와 블루모스크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대표적 이슬람 사원 술탄아흐멧이 마주 보고 있는 광장은 전세계 여행자들이 어깨를 부딪히는 곳이다. 오래된 교회 건축물 중 하나로 4세기(360년)에 지은 아야소피아 한가운데에는 유명한 성 모자상 천장 모자이크화 아래로 코란의 경구들이 적혀 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이스탄불로, 기독교 중심지에서 이슬람 중심지로 바뀌었던 이 도시의 독특한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풍경이다. 5월 초 이곳을 찾았을 때 높이 56m에 이르는 천장의 돔 반쪽은 복원공사 중인 지지대에 가려 있었다. 2010년 유럽 문화수도로 지정된 이스탄불은 내년 본격적인 여행객 유치를 위해 이처럼 도시 곳곳의 문화재 정비와 복원작업이 한창이다.
아야소피아 옆으로 오스만 왕조의 지배자인 술탄들이 400년 동안 거주해오던 톱카프 궁전이 장대하게 펼쳐져 있다. 이곳에 바로 서구의 여행자들을 흥분시켰고 또 이슬람 문화를 오해하게 만든 하렘이 있다. 수많은 여행자들의 열광적 호기심 때문인지 입장료를 따로 받는 하렘에서 가이드가 “술탄의 어머니와 아내, 자식들이 머물며 교육받던 곳”이라고 강조하는 데에서 이방인의 오해를 씻어내려는 의도가 느껴졌다. 그 유명한 터키식 욕탕의 수도꼭지마저 마른 지금의 하렘을 빛나게 하는 건, 각 방의 벽들을 채우고 있는 정교한 문양의 타일들이다. 톱카프 궁전의 너른 정원은 색색깔의 튤립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흔히 네덜란드의 꽃으로 알려진 튤립은 터키의 꽃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장 영화로웠던 오스만 제국의 황금시대를 터키인들은 ‘튤립의 시대’로 이른다고 하며, 해마다 4월부터 5월 초까지 이스탄불에는 큰 규모의 튤립 전시회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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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카프 궁전 앞의 정원. 4~5월에는 시 전체가 튤립으로 뒤덮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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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타 다리를 건너면 신시가다. 갈라타 다리 위는 허름한 차림으로 바다에 낚싯대를 던지는 사람들로 북적이며 다리 아래는 트렌디하고 고급스러운 식당들이 즐비하다. 다리 위가 흑백이라면 다리 밑은 형형색색이다. 자신이 나고 자란 이스탄불을 ‘흑백’의 도시로 묘사한 작가 오르한 파무크는 갈라타 다리 위 인파의 “빛바랜, 회색의 그림자 같은” 옷차림을 묘사하며 이 유서 깊은 도시에 “150년 동안 천천히 내려앉은 패배감과 상실감”을 적어 내려갔다. 신시가의 가장 큰 볼거리인 돌마바흐체 궁전은 어떤 극과 극, 화려함의 끝에 치달았던 오스만 제국의 영화와 그 몰락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장소라서 흥미롭다.
반드시 단체 가이드 투어를 해야 하며 모두 보려면 4시간이 넘게 걸린다는 이 거창한 궁전은 오스만 제국을 무너지게 한 원인 중 하나라고 한다. 궁전을 짓고 치장하는 데 무리하게 돈을 썼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돌마바흐체의 화려함은 숨이 막힐 정도다. 궁전을 구성하는 43개의 홀과 285개의 방은 강렬한 색감의 가구들, 위압적으로 느껴질 만큼 거대한 샹들리에, 유럽에서 선물받은 보물과 그림들로 꽉꽉 들어차 있다. 오스만 제국이 몰락한 뒤 현대 터키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우리에게는 케말 파샤로 더 잘 알려진 초대 대통령의 집무실로 사용됐다는데 이 비현실적으로 화려한 실내를 빠져나오면 담장 너머 보스포루스 해협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푸른 바다만이 이 도시의 찬란하고 쓸쓸한 역사를 무심하게 지켜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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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시 딜라이트’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디저트 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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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와 유럽을 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은 이스탄불의 생명줄 같다. 이스탄불을 폐허와 비애의 도시로 명명한 오르한 파무크조차 “보스포루스에서 노니는 즐거움이란, 거대하고, 역사적이고, 방치된 도시 속에 살면서 깊고, 힘차고, 변화무쌍한 바다의 자유와 힘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행자들에게 보스포루스 크루즈는 이스탄불을 짧은 시간에 스케치할 수 있는 기회다. 서늘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한 시간가량 바다를 가로지르면 유럽 쪽에는 유서 깊은 모스크들과 돌마바흐체 궁전, 갈라타 탑 등 주요 유적지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아시아 쪽에는 고전적인 오스만 양식의 저택들과 새로 지은 주택·레스토랑, 놀이터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시민들과 팬티 차림으로 자맥질을 하는 꼬마들까지 이스탄불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여행의 마지막 날 구시가와 그랜드 바자와 이집션 바자를 들렀다. 남대문 시장을 떠올리게 하는 그랜드 바자는 4400여개의 가게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는 시장으로 스카프와 화려한 문양의 접시, 가죽 제품 등 기념품과 선물을 싸게 살 수 있는 곳이다. 정비가 된 그랜드 바자보다 전통적이고 규모가 작은 이집션 바자가 여행자들에게는 편하게 볼거리가 많다. 중세부터 세계적으로 유명했으며 영화 <나니아 연대기>에도 등장한 빛깔 고운 디저트용 젤리 ‘터키시 딜라이트’와 갖가지 향신료 등을 만날 수 있다. 두 시장 모두 흥정을 해야 하는데, 부르는 값의 반부터 흥정해야 바가지를 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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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의 심장부라고 일컬어지는 갈라타 다리. 가운데 뒤편으로 보이는 탑이 갈라타 타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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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포루스 크루즈로 유럽과 아시아를 동시에
이스탄불에는 찾아가지 않아도 늘 따라다녀 잘 안 보이다가 도시를 떠나는 날 문득 발견하게 되는 유적이 있다. 5세기 초 비잔틴 제국의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세웠다가 1453년 이슬람 정복의 날, 그 유명한 콘스탄티노플 함락 때 무너진 성벽이다. 일부는 복구됐지만 무너진 채 500년의 시간을 견뎌온 성벽은 말 그대로 폐허와 비애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이스탄불을 다시 찾게 되는 여행자라면 박제된 화려한 시절보다는 시간의 더께가 쌓인 이 애잔한 풍경에 매혹됐음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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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여행수첩
환전은 그랜드바자에서
◎ 터키항공은 매주 월·수·금·일요일 밤에 이스탄불 직항편을 운항한다. 터키항공은 아시아나항공과 스타얼라이언스에 가입돼 있어 마일리지 연계를 할 수 있다. 대한항공도 매주 수·금·일요일에 이스탄불 직항편을 운항한다.
◎ 주요 유적지는 입장료를 받는데 보통 10예니터키리라(YTL) 정도 한다. 1YTL은 우리 돈으로 800원 남짓하며 환전은 달러나 유로화로 할 수 있다. 공항 내 환전소보다 그랜드바자 주변 환전소가 조금 더 좋게 쳐준다. 반드시 한 번은 타볼 것을 추천받은 보스포루스 크루즈는 배의 종류나 운행시간별로 가격 차이가 있는데, 이 역시 10~15YTL이면 한두 시간 유람선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주요 유적지 중 일부는 월요일이나 화요일 휴관을 하니 확인해보고 방문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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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글·사진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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