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6.03 18:52
수정 : 2009.06.03 18:52
[매거진 esc] 투쓰리 풀카운트
모든 놀이문화는 인생에 비유된다. 바둑에 죽고 못 사는 이들은 정사각형 오동나무판 위에 생로병사가 담겨 있다고 말한다. 축구에 미친 이들은 그라운드에서 희로애락을 배운다. 이제는 스타크래프트를 통해 자본주의를 논하는 게이머들도 있다.
야구도 예외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을 던져서 방망이로 치고 달리는 이 게임 속에 인생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종종 그 비유들은 지극히 단순한 수준에서 멈춘다. 인생에도 직구 승부가 필요하다? 구속이 받쳐주지 않는 직구는 타자들에게 ‘어서 때려 줍쇼’ 하는 노릇밖에 되지 않는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도 이승엽쯤 되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요컨대 이런 이야기다. 야구 속 인생이란, 9회 말 투아웃에 끝내기 역전타를 쳐낸다는 판타지가 아니라는 거다. 인생 역전의 기회란 로또 당첨 확률에 가까운 것처럼, 야구에서도 회심의 역전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지난 3월의 WBC 결승전을 떠올려보자. 이범호가 9회 말 동점타를 쳐낼 때만 해도 모두가 기적을 꿈꾸었다. 하지만 연장전에서 우리는 그 기적을 일본의 몫으로 양보해야 했다. 야구란 그런 것이다. ‘생각대로 하면 되고’ 따윈 대체로 없다. 그 어떤 경기보다 운의 변수가 많은 스포츠가 야구다. 잘 던진 강속구가 홈런의 제물이 되기도 하고, 배트에 잘못 맞은 타구가 중전안타가 되기도 한다. 야구와 인생은, 이 아이러니에서 만난다.
‘투쓰리 풀카운트’는 이러한 아이러니에 30년 동안 울고 웃었던 어느 야구팬의 고백록이다. 어쩌다 프로야구 원년부터 하위 팀 팬으로 코가 꿰어, 야구에서 인생의 쓴맛을 먼저 배운 이의 애달픈 독백이기도 하다. 그저 한사람의 팬으로 일상에 배어 있는 야구의 아이러니와 매력, 그 이야기들을 시작해보려 한다.
조민준/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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