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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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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금태섭, 사람을 건너다
“사랑은 할 때마다 새롭단다.”대학 시절 사귀던 여학생에게 차이고 식음을 전폐한 채 이런 여자는 다시 못 만날 거라고 푸념하던 내게 엄마가 가소롭다는 듯이 던진 말이다. 충격이었다. 한없이 성스러운 여인으로만 알던 엄마가 얼마나 많이 연애를 했기에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엄마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날 이후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연애를 많이 했다는 말은 아니다) 사람이야말로 흥미진진하고 누구를 만나든지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당대의 대가들도 같은 얘기들을 많이 했다. 바람둥이 기질을 나무라면서 “사랑은 여자들이 서로 다르다는 환상이다”라고 말하는 자신의 후원자에게 “사랑은 여자들이 정말로 서로 다르다는 발견이다”라고 일갈한 제임스 케인. 그는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라는 불후의 통속소설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고향인 아나폴리스에 아내를 두고 뉴욕에서 다른 여자와 동거하면서 또다른 대여섯 명의 여인과 데이트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람들 사이의 만남이 항상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경이’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만날 때마다 싸우면서 지긋지긋한 원수로 지내는 사람도 많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가까운 친척과 끊임없이 소송을 하면서 평생을 보내는 이도 있다. 밥벌이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 말리지는 않고 있지만 볼 때마다 뭐하는 짓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화를 내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낭비하는 일이다. 직업상 수많은 사람들이 관계를 갖는 것을 보면서 가장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화를 내면서 속상해하는 경우를 접할 때다. ‘사람을 건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면서 첫 번째로 화난 사람과 대화하는 법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그래서다.
화를 내는 것은 양쪽이 서로 상대방을 미워할 때만 가능하다. 일방적인 증오는 드물다. 화난 사람과 대화할 때는 혹시 당신도 화를 내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 물어보라. 그리고 먼저 화를 풀어라. 상대방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진짜 나쁜 놈과 만나서 진정이 안 되는데 어떻게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미느냐고? 그럴 때는 방법이 있다. 상대방보다 더 나쁘고 더 한심한 사람을 떠올리는 거다. 그러면 눈앞에 있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이 안 떠오른다고? 한 명 알려드릴 수 있다. 최근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 자기가 낸 세금은 단 1원도 써서는 안 되고 국민장을 치러서도 안 된다는 글을 쓴 사람이 있다. 직업상 많은 사람을 만나본 경험으로 장담하건대 당신의 화를 돋우는 사람이 아무리 나빠 보여도 거기 따라가기에는 턱도 없다. 화가 나면 그를 떠올려보라. 그리고 상대방에게 당신이 아무리 미워도 그 정도는 아니지 않으냐고 물어보라. 터질 것 같은 분노도 허탈한 웃음으로 바뀔 것이다.
금태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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