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6.10 19:29
수정 : 2009.06.10 19:29
[매거진 esc] 투쓰리 풀카운트
“어쩌다가 이따위 팀의 팬이 돼가지고 ….” 탄식이 샌다. 오늘로써 3연패. 새로울 것 없는 자책이다. 이 자조의 레퍼토리는 올 시즌 이놈의 팀이 기록한 연패의 횟수만큼 반복했으니까.
실력도 안 돼, 투지도 없어. 심지어 지는 게 당연하다는 듯한 얼굴들을 하고 있는 이 꼴찌 언저리의 구단을, 왜 나는 멀리하지 못하는 걸까? 이러한 자문은 ‘어쩌다 이런 사람을 사랑하게 돼가지고 …’ 하며 괴로워하는 이들의 한숨과 그리 멀지 않다. 팀이 연패를 달릴 때는 그간 폭증한 흡연량 때문에라도 헤어지겠다며 마음에도 없는 다짐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그 와중에 1승이라도 챙기면 돌변. 이 애물덩어리 팀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다. 평소 시간도 내주지 않고 속을 태우던 그녀가, 어느 날엔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살갑게 달라붙으면 그간의 응어리 따위야 고이 접어 나빌레라 하는 헤벌레와 다르지 않다. ‘타선이 오늘만큼만 해주고 선발 투수진이 안정되면 반격도 가능해.’ 미래도 온통 장밋빛이다. 그러나 이 환상은 1승 후 이어진 연패와 함께 찌질한 투정의 반복으로 여지없이 깨어진다. “어쩌다 이놈의 팀을 ….”
경기장을 다니며 응원하는 이들은 심지어 피해망상에까지 시달린다. 야구장에만 가면 진다. 나 때문이다. 상대를 그토록 원망하다가도 마침내는 자책감에 사로잡히는 열애남의 변덕스러운 심리와 다를 바가 없다.
바람 피울 생각도 안 해 본 게 아니다. 연패가 지속되면 응원팀 다음으로 호감을 가지고 있는 이른바 ‘세컨드’ 팀의 남다른 플레이에 안정을 찾고 싶어진다. 능력도 있고, 투지도 넘치는 저런 팀을 놔두고 왜 허덕거리는 팀만 좇았을까. 눈이 맑아진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두 팀이 맞붙는 날이면 한때의 동경은 팽개친 채 세컨드 팀을 향해 쌍심지를 켠다. 아무리 지긋지긋하다 해도 내 팀 밟히는 꼴은 또 못 본다. 이쯤 되면 다시금 깨닫는다. 나는 이 지리멸렬한 팀으로부터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프로야구 원년 팬이니, 자그마치 27년간 환기를 거듭해온 깨달음이다.
조민준/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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