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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6.10 20:39 수정 : 2009.06.10 20:39

영화 〈원스〉에 등장하는 더블린의 세인트 스티븐 공원.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공원에 불과하다.

[매거진 esc] 노중훈의 여행지 소문과 진실

영화에 감동받아 애써 촬영지까지 가보면 적이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다. 영상 이미지라는 것이 끌밋한 배우와 부러 엇갈리게 만든 스토리, 적절히 감정을 고조시키는 음악과 최첨단 컴퓨터그래픽의 하모니를 통해 빛나기 때문일까.

기회가 닿아 <반지의 제왕> 촬영지를 두 번 방문하게 됐다. ‘1차 원정’ 때 통가리로 국립공원을 방문하고 카이토케 지역 공원을 살펴보았지만, 사실 영화의 흔적이라는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첨단 기술을 통해 영화의 살을 부쩍 늘린 탓도 있지만 촬영지에 있던 세트를 모조리 철거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서 어떤 장면을 촬영했다는 설명을 듣기 전에는 도통 알 길이 없다. 카이토케 공원에도 간단한 푯말 하나만이 그 거대한 영화를 추억할 뿐이다.

일본 홋카이도의 오타루는 한때의 경제적 쇠퇴를 딛고 관광도시로 새롭게 일어선 고장이다. 오타루의 인지도를 제고하고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끄는 데는 영화 <러브레터>의 이미지가 적잖이 공헌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오타루 운하. 관광객들로 늘 박신박신한데, 거무튀튀한 색을 띠는 오타루 운하는 그 자체로는 그다지 매혹적이지 않다. 운하를 따라 늘어선 벽돌 창고들과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취를 살짝 자아낸다.

풍부한 문화 유적을 갖춘 이탈리아 로마는 설명이 따로 필요 없는 관광 일번지. 콜로세움을 비롯해 갖가지 명소가 즐비한데, 그중 대다수의 여행자를 실망시키는 것이 바로 코스메딘 성당의 ‘진실의 입’이다. 하수도 뚜껑처럼 생긴 석판을 보는 순간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입을 삐죽 내민다. 석판에 새겨져 있는 인물은 바다의 신 트리톤. 거짓말을 한 사람이 트리톤의 입에 손을 넣으면 이내 다문다는 전설이 흐른다. 물론 실제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진실의 입 자체도 실망스럽지만 주변에 다른 관광지가 없다는 것 또한 낙심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것은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영화 <로마의 휴일> 덕이 크다. 실재와 이미지가 극명하게 어긋나는 대표적인 케이스다.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계단을 오르던 장소인 스페인광장 역시 영화 덕에 명소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막상 가보면 심드렁해진다. 광장은 그냥 광장일 뿐이다.

아름다운 음악영화 <원스>의 배경을 이루는 아일랜드의 더블린은 영화 속에서 두드러지지 않는다. 브룩 실즈의 청초하면서도 고혹적인 자태와 더불어 <블루 라군>의 9할을 차지하는 피지의 순정한 자연이나 <반지의 제왕>의 ‘중간계’를 가능하게 했던 뉴질랜드의 장엄한 풍경처럼 스크린을 먹어치우지 않는다.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낮은 목소리로 흐르며 두 사람의 감정을 보듬을 뿐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어느 거리 모퉁이에서 기타를 둘러멘 한 남자가 노래를 부른다. 곧이어 술과 약에 전 듯한 그의 동생이 나타나고, 이내 영화의 유일한 추격 장면이 펼쳐진다. 거리 공연으로 번, 그야말로 몇 푼 되지도 않는 돈을 갖고 튄 동생이 형에게 뒷덜미를 잡힌 곳은 세인트 스티븐 공원. 푹신한 잔디와 화단, 분수, 연못, 야외 음악당 등을 갖추고 있는 공원은 더블린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는 곳이기는 하지만 여행객으로서 보면 별다른 매력을 발견하기 어렵다.

노중훈 여행 칼럼니스트 superwin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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