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7.01 21:41
수정 : 2009.07.04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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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 화포천 ‘버드나무 다리’ 위에서, 생태탐방에 나선 어린이들이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다. 영강사 동쪽 철길 건너 물길이다. 다리 가까운 곳에 버드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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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쓰레기 더미에서 생태습지로 거듭난 김해 화포천 옆 부엉이 우는 봉하마을
“이 조개가 ‘대칭이’란 조개예요. 민물조개 중 제일 큰 놈이죠. 바닥에 살면서 때때로 물에 떠오르기도 해요.”
‘화포천 환경지킴이’ 사무국장 황찬선(41·회사원)씨가 조개를 건져 어린이들에게 건넸다. 지름이 10㎝나 되는 큰 조개를 받아들고 아이들은 서로 만져보며 신기해한다.
겨울엔 돌아온 철새들 바글바글
지난 20일 오전 김해시 화포천 습지. 환경지킴이들은 화포천을 찾은 늘푸른전당(창원시 삼동동)의 초등생 24명을 고무보트에 나눠 태우고 생태탐방 행사를 시작했다. 화포천지킴이는 김해시민들로 이뤄진 자원봉사단체다. 어린이들은 물길을 돌며 수면 가득 꽃을 피운 노랑어리연과 마름 등 수생식물, 대칭이와 귀이빨대칭이 등 조개류, 실잠자리·물잠자리 등을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설명을 들었다.
김해 화포천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규모 하천 습지다. 낙동강 하류의 한 지류다. 김해시 진례면 대암산에서 발원해 한림면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20여㎞ 길이의 물줄기는 진영읍과 한림면의 경계를 이루며 드넓은 습지대를 형성한다. 무성한 갈대숲 사이로 물골이 휘돌고 고이고 흐르며 다양한 식생을 이룬다. 지대가 낮아 홍수 땐 수역 전체가 물에 잠기는 곳이다.
2년 전까지도 주변 공단들에서 흘러나온 오·폐수와 버려진 쓰레기들로 “쓰레기하치장”을 방불케 했다고 한다. 이랬던 화포천이 최근 생태습지 학습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지킴이들은 지난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수많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화포천에서 100여t에 이르는 쓰레기를 건져냈다. 올해도 고무보트 등을 이용해 22t의 쓰레기를 수거하는 등 다달이 습지 정화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천 바닥과 갈대숲 곳곳에 폐타이어·냉장고에서부터 비닐·밧줄·페트병 등까지 온갖 쓰레기들이 들어차 있었어요.” 황씨는 “수거활동과 주변 공단의 오·폐수 방류 감시활동 등을 1년여 동안 하고 나니 하천이 눈에 띄게 깨끗해졌다”고 말했다.
환경연구자들의 모임인 ‘자연과 사람들’ 조사로는 화포천 습지엔 가시연 등 160여종의 식물, 수달·남생이 등 40여종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낙동강유역환경청 김병도 팀장은 “본격적인 조사가 이뤄지면 훨씬 더 많은 생물종이 드러날 것”이라며 “귀이빨대칭이·삵 등 멸종위기종도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화포천지킴이들이 한목소리로 말했다. “지난겨울 찾아온 철새들이 정말 볼만했습니다. 노랑부리저어새·황로·왜가리 등이 무리지어 찾아와 깜짝 놀랐죠. 화포천 생태공원 가꾸기에 희망을 갖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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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포천 습지 갈댓잎에 앉은 실잠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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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버들 드리운 갈대숲 사이 물길은 소금쟁이와 잠자리·거미·나비들 세상이다. 갈댓잎에서도 노랑어리연꽃잎에서도 왕잠자리·밀잠자리들이 눈알을 굴리며 자리다툼을 벌인다. 왕버들 숲에서 개개비가 한바탕 울고 나니 화포천 습지는 다시 나른한 정적에 빠져든다. 정적을 깨는 건 가끔 튀어오르는 물고기들과 때때로 오가는 경전선 철로 열차 소리다. 자광사 앞쪽 철길 건너의 보리밭 주변과 영강사 앞 철길 건너 생태습지 표지석 부근, 그리고 ‘버드나무 다리’ 주변이 화포천 습지 감상 포인트로 꼽힌다. 일교차 큰 날 아침이면 화포천 습지대는, 피어오르는 물안개로 한 폭의 거대한 수묵화를 펼쳐 보인다.
화포천 옆 마을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봉하마을이다. 화포천은 ‘바보 노무현’이 생전에 지극히 아끼고 사랑했던 생태하천이다. 퇴임 뒤 고향으로 돌아가 처음 벌인 공식행사가 바로 화포천 청소작업이었다. 평소 어릴 적에 보고 누렸던 아름다운 옛 하천 모습을 되살리는 일에 큰 애착을 가졌다. 지킴이들은 “화포천 일대를 대규모 환경생태 학습 공간으로 만드는 게 그분의 꿈이었다”고 말했다. 얼마 전 화포천 생태공원화사업 추진을 일시 중단했던 김해시는 이달 중 화포천에 친환경 관찰로(8㎞) 개설, 생태학습장 조성 등 공원화사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화포천(花浦川)의 옛 이름은 신교천(薪橋川)이다(<신증동국여지승람> ‘교량조’). 신교란 삽교(섶다리·나무다리)였던 다리가 돌다리(石橋)로 바뀌면서 붙은 이름이다. 옛 진영 주민들은 이 다리를 건너 ‘김해부’로 오갔다. 다릿돌 하나가 진영대창초등학교 이건 기념비의 빗돌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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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 사진전시장(옛 농기계창고) 벽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들이 빼곡히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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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은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에 속한다. 1940년대까지 몇 집 살지 않았으나 50여년 전 마을 앞 습지대를 농지로 개간하면서 주민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현재 40여가구 100여명이 산다.
‘봉하’란 봉화산 아래를 뜻한다. 봉화산(140m)은 봉홧불을 올리던 봉수대가 있던 산이다. 본디 이름은 자암산이다. 자암이란 암자가 있던 데서 유래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봉홧불을 올리던 자암산 봉수대 기록이 나온다. 자암은 이름만 전하는 암자다. 가락국 시조 수로왕의 왕비 허황옥이 태자를 위해 창건했던 암자라고 한다. 김해시 문화유산해설사 이문수(62)씨는 “봉화산 부엉이바위 옆 쓰러진 마애불 아래 빈터가 바로 자암 터라고 알려진다”고 말했다.
봉화산 줄기엔 부엉이바위·사자바위·병풍바위 등 바위절벽들이 있다. 부엉이바위엔 실제로 수리부엉이가 둥지를 틀고 있어 저물녘이면 부엉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높아 보이는 봉화산 탐방로는 생각보다 짧다. 사자바위까지 다녀오는 데 30~40분이면 된다.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는 건 쓰러진 천년 마애불과 1959년 세워진 ‘호미를 든 부처상’(호미 든 관음개발성상), 불교수련원 정토원 등 볼거리가 있고 봉하마을과 건너편의 뱀산 산줄기, 화포천 습지 등이 내려다보이는 시원한 전망이 있기 때문이다.
봉화산 마애불에 얽힌 이야기가 전한다. 당나라 황후의 꿈속에 한 청년이 밤마다 나타나 괴롭혔다. 신통력을 가진 스님이 청년을 신라 땅 산자락 돌 속에 가둬 마애불로 만들었다. 뒤에 확인해 보니 김해 자암산의 마애불이었다고 한다. 이 마애불이 언제 쓰러졌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옆으로 누운 마애불 위엔 지름 1.2m 크기의 바위가 얹혀 있었다. 없애면 마을이 평화로워진다는 전설이 있어 1984년 제거했다. 마애불은 고려 초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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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산 자락 바위틈에 쓰러져 있는 고려시대 마애불. 한 탐방객이 말했다. “일으켜 세워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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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불은 언제 쓰러졌을까
봉하마을 앞 산줄기가 뱀산이다. 뱀의 머리 형상 앞쪽(화포천 쪽)엔 논 가운데 작은 봉우리가 솟았다. 주민들은 이걸 ‘개구리똥뫼’(개구리독뫼)라 부근다. 뱀산과 독뫼(독산·돌산)의 모습은 뱀이 개구리를 노리는 형국이다. 개구리독뫼엔 ‘개구리가 홍수를 틈타 독뫼를 진례 쪽으로 옮기면 그쪽에 궁터가 생길 수 있었는데, 개구리가 실수해 못 옮겼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봉하마을에서 가까운 화포천변 한림면 장방리 영강사 밑엔 고색창연한 갈대집 세 채가 있어 둘러볼 만하다. 문화재로 지정된 한림면 장방리 갈대집이다. 이 중 한 채(옛 청주 송씨 집안 재실)는 켜켜이 쌓인 갈대지붕 두께가 50㎝에 이른다. 마루·기둥·벽 등도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70년대까지도 주변 집들이 다 갈대집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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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여행쪽지
숙박도 체험의 재미
◎ 수도권에서 경부고속도로·중부고속도로~대전·통영고속도로~진주에서 남해고속도로 이용해 동창원나들목에서 나가 진영읍으로 간다. 또는 영동고속도로 여주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이용해 마산 쪽으로 가다 철원분기점에서 남해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부산 쪽으로 가다 동창원나들목에서 나간다. 14번 국도 따라 진영읍 거쳐 부평사거리 지나 본산입구삼거리에서 좌회전, ‘노 대통령 생가’ 팻말을 따라간다. 승용차로 자광사 앞 배수문 부근 철길까지 간 뒤 차를 세워두고 굴다리 지나 화포천 습지 옆길로 갈 수 있다. ‘화포천습지환경지킴이’ 사무실(봉하마을 노란 컨테이너박스)에 문의하면 설명을 들을 수 있다(cafe.daum.net/hwapochon). 봉하마을은 주말이면 참배객들로 붐빈다.
◎ 봉하마을의 쉼터와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테마식당에서 국수(장군차국수)·쇠고기국밥·비빔밥 등을 먹을 수 있다. 한림면 안하리 화포천 옆의 화포메기국(055-342-6266)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뒤 가끔씩 들러 식사하던 곳(14번 국도로 다시 나가 김해시 쪽으로 가다 한림 팻말 보고 좌회전해 들어간다)이다. 양식 메기를 푹 끓여 살을 발라내고 뼈를 따로 고아 국으로 끓여낸다. 5000원.
◎ 김해시내 봉황동 한옥체험관엔 1박 4만4000원(2인실·평일)부터 9만원(4인실·주말)까지 다양한 객실이 있다. (055)322-4735. 김해시청 관광과 (055)330-4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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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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