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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7.22 20:33 수정 : 2009.07.22 20:33

마천루가 즐비한 대도시 댈러스의 모습은 텍사스와 거의 동일시되는 서부 카우보이의 이미지를 단숨에 날려버린다.

[매거진 esc] 노중훈의 여행지 소문과 진실

대학교를 다니던 도중 휴학을 하고 미국 텍사스의 주도인 오스틴에서 5개월 정도 어학연수를 한 적이 있다. 짧은 기간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니 주변 친구들이 “촌구석에서 심심하지 않았느냐”고 물어왔다. 올봄 텍사스로 출장을 갈 일이 있었다. 길 떠나기 전 주변 친구들은 또 이렇게 이야기했다. “말은 원 없이 타보겠구나.” 결론부터 내놓자면 오스틴은 촌구석이 아니었고, 텍사스에서 매일같이 인마일체(人馬一體)의 즐거움을 누린 것도 아니었다.

오스틴은 텍사스 주립대학을 위주로 돌아가는 대학 도시였다. 젊은이들이 많아서 그런지 분위기는 세련됐고, 멕시코와 인접한 지역답게 문화는 색다른 데가 있었다. 텍사스 최대의 도시인 댈러스에서는 거친 황야를 주름잡던 사내들의 시척지근한 냄새가 조금도 어른거리지 않았다. 카우보이는 댈러스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프로 미식축구팀의 이름일 뿐이다. 메트로폴리탄 댈러스는 뜻밖에도 쇼핑의 천국이었다. 각종 쇼핑몰과 이름난 명품 백화점들이 수두룩했다. 미국 전역을 통틀어 1인당 쇼핑센터의 수가 가장 많은 곳은 라스베이거스도 뉴욕도 아닌 바로 댈러스다. 댈러스 포트워스 국제공항을 지척에 둔 작은 도시 그레이프바인이 미국에서 다섯째로 큰 와인 생산지라는 점도 의외였다. 강렬한 햇빛과 큰 일교차와 배수가 잘되는 토양이 포도 생장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텍사스에는 169개 이상의 와이너리가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텍사스 주 관광청 직원이 “텍사스 하면 으레 카우보이만을 떠올리기 때문에 다양한 면을 부각시키기가 쉽지 않다”고 한 말이 조금은 이해될 법도 하다.

이탈리아 여행의 금과옥조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로마 시대의 유적을 꼽는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탈리아만큼 다채로운 문화를 간직한 나라도 드물다. 20개에 이르는 이탈리아의 주(州)들은 서로 다른 매력을 뽐낸다. 그중 북부 지방인 롬바르디아 주의 코모는 바다 같은 호수를 가진 곳이다. 호숫가를 한 바퀴 돈 길이가 180킬로미터에 이른다. 호숫가 산발치와 산등성이에 알알이 박혀 있는 집들은 점묘로 그려진 그림 같다. 건물들의 성분은 부호들의 대저택이고 명사들의 별장이며 귀한 미술품과 정치하게 꾸며진 정원을 품고 있는 빌라들이다. 영화 <007 카지노 로얄>과 <오션스 트웰브>가 이미 이곳을 거쳐 갔으며, 조지 클루니와 베르사체와 아랍의 왕족 등이 이곳에 별장을 두고 있다. 산과 호수와 별장이 만들어 놓은 현란한 무대를 누비는 것은 조각배와 스피드보트와 유람선이다. 물 위를 흐르는 그 아름다운 탈것들 속에서 현지인과 관광객은 너나 할 것 없이 풍경을 희롱한다.

이름난 여행 목적지일수록 대표적인 이미지에 포위돼 있는 경우가 많다. 선입견과 천편일률적인 여행 코스가 특정한 이미지를 더욱 광범위하게 유포하고 한층 공고하게 만든다. 하지만 접근을 달리해 한 꺼풀만 벗기면 여러 빛깔의 모습이 자리하고 있음을 손쉽게 알 수가 있다. 여행은 어쩌면 엉겨붙은 오래된 이미지의 먼지를 털어내는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노중훈 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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