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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상자에 대한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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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지마켓과 함께하는 시골 밥상 공모전
책상 위에 보이는 것은 직장 동료가 준 새싹 채소 상자다. 같이 회사 관련 행사에 갔을 때, 나 몰래 상자 하나를 챙기더니 그게 바로 저 상자였다. 내가 점점 괴팍해지는 것은 녹색이 부족해서라며 열심히 키워보란다.
성의에 화답할 겸, 직장 스트레스도 풀 겸 책상 위 파일들을 치우고 새싹 상자를 놓았다. 내 생에 식물을 키워본 적은 처음이었다. 씨앗을 뿌리고 검은 뚜껑을 덮었다. 며칠 뒤 상자를 여니 물을 너무 부어 씨앗에 곰팡이가 생겨버렸다. 두 번째에는 욕심껏 뿌린 탓에 자랄 공간이 없어 망쳤다. 세 번째에는 씨앗을 하도 듬성듬성 뿌렸더니 큰 상자가 무색하게 솟아오른 것은 쉰 개 남짓한 새싹들뿐. 그래도 슬슬 좌절해 가던 참이었는데 기특하게 자라 주었다.
동료와 구내식당에서 닭볶음탕에 새싹을 뿌려 먹으며 “하나도 안 느끼해!”를 번갈아 외쳤다. 저 넓적한 상자를 두고 있으니 오가는 사람마다 궁금해하면서 들여다본다. 보기엔 저래도 먹어도 되는 거라는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똑똑 따먹는 사람들 때문에 언제나 좀 듬성듬성한 게 안타깝다. 특히 담배 피우고 와서 입가심하겠다고 새싹 한 개씩 동냥질하는 남자 직원 한아무개씨! 다음달에 생일이라니 직접 키워 드시라고 하나 선물할 생각이다.
새싹 채소를 키우다 보니 본의 아닌 유혹도 있다. 딸의 여름방학 숙제로 새싹 상자를 넘기면 5만원을 주겠다는 은밀한 제안도 들어온다. 원망을 사는 일도 있다. 사무실을 둘러보던 사장님이 새싹 상자를 보고 감탄하시며 창립기념일 선물로 좋겠다고 하는 바람에 그날 담당 직원에게서 왜 괜히 보이는 곳에 상자를 두어 사달을 만드느냐는 항의를 듣고 상자를 들고 집으로 갈 뻔했다. 상자를 하나 더 사서 이단짜리 새싹 상자를 키워볼까 하는데 어디다 놓아야 하나 고민중이다.
김가비/부산 사하구 당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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