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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8.05 20:46 수정 : 2009.08.06 19:45

전남 신안의 갯벌은 세계 5대 갯벌 가운데 하나다. 오염되지 않은 갯벌에서 좋은 천일염이 태어난다. 20여일 햇빛을 받은 남해 바닷물은 결정지에서 6시간 넘게 햇빛을 쬐고 소금을 토한다. 소금밭이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 지역 태평염전을 찾아가다…저수지·증발지 거쳐 결정지에서 소금꽃 피어

소금이 없다면 음식도 없다. ‘아주 소중한 것’의 비유로 소금이 성경에 등장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밝힐 뿐이니라”(<마태복음> 5장13절)고 말할 때, 소금이 아닌 다른 사물로 자신의 뜻을 비유했다면, 설교는 무척 심심했을 것 같다.

다른 현대의 먹을거리와 마찬가지로 소금도 더는 예수 시절의 방식으로 생산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소금은 화학작용을 이용해 바닷물에서 염화나트륨(NaCl)만을 분리해 생산한다. 미네랄 성분이 없고 99%가 염화나트륨으로 구성된 소금이다. 오로지 순수한 짠맛을 낸다. 제조 비용이 저렴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기계염(정제염)이다.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태평염전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태평염전

태양의 부스러기

천일염은 이와 달리 바닷물을 가둬 햇빛으로 증발시켜 소금을 얻는 전통의 방식으로 생산한다. 지난달 30일 낮 12시 전남 신안군 지도읍 지신개 선착장에서 증도로 들어가는 배를 탄 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천일염 염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 지역으로 지정된 태평염전이다.

우리나라 천일염의 70%가 전남 신안군에서 생산된다. 조수 간만의 차, 강한 태양, 적당한 바람 등 좋은 염전이 가져야 할 모든 조건을 가졌다. 증도 태평염전은 신안군에서도 가장 큰 염전이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태평염전에 위치한 ㈜섬들채의 정구술 차장이 마중나왔다. “아주 정신없습니다.” 미디어의 현장탐방 요청을 혼자 담당하느라 5분에 한 번씩 휴대전화를 받는다. “식사부터 하시지요.” 염전 직원들이 먹는 구내식당의 반찬에서 묘한 감칠맛이 났다. 김치부터 ‘깡다리’(조기 새끼를 일컫는 사투리)젓갈까지 천일염으로 만들었다고 정 차장은 설명했다. 기계염의 끝맛은 기분 나쁜 쓴맛인 데 반해, 미네랄이 많이 들어간 천일염은 풍부하고 깊은 끝맛을 낸다. 정 차장이 소금장인들은 이를 ‘단맛’이라고 표현한다고 귀띔했다. 당장 염전에서 천일염을 맛보고 싶었다.

30일 오후 2시 기온은 28도다. 그러나 풍속 1.8m/s의 짭짤한 바닷바람 때문인지 시원했다. 염전은 저수지, 증발지, 결정지로 이뤄진다. 저수지에 바닷물을 가두고, 이를 며칠에 걸쳐 햇빛에 증발시켜 소금성분을 높인 뒤, 마지막으로 결정지에서 소금 결정을 얻는다. 7월 증도 앞바다의 평균 염도는 2%다. 20여일 동안 증발지에서 물을 증발한 뒤 25% 농도의 짙은 바닷물이 결정지에 다다른다. 결정지에서 6~9시간 뒤면 소금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30일 신안군의 일조시간은 8.5시간이었다. 하루 8시간이 넘는 남도의 햇빛이 바닷물 속에서 소금을 끄집어낸다. 누군가 포도주를 두고 “액체로 된 태양”이라고 불렀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천일염은 ‘고체로 된 태양’ 혹은 ‘태양의 부스러기’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정구술 차장은 “소금꽃을 피운다”고 표현했다. 이런 작업이 4월 중순부터 10월초까지 계속된다.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태평염전

염전 체험장에 끊임없이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증도에는 태평염전, 소금박물관, 염전체험장 외에도 우전 해수욕장과 근처에 리조트 등 관광지가 있다. 정 차장의 천일염 생산 과정과 염전에 대한 설명도 두세 번 반복됐다. 140만 평 규모의 태평염전 대부분은 증발지로 이뤄져 있다. 갯벌에 둑을 만들어 수십 개의 격자모양으로 구획을 나눴다. 가령, 하루 동안 햇빛을 받은 바닷물은 수로를 따라 바로 옆 증발지 칸으로 이동한다. 빈칸에는 저수지에서 새로 퍼온 바닷물을 담는다. 증발지 칸과 칸은 둑으로 나눠져 있고 이동할 때만 수문을 연다. 오후 3시의 결정지에는 벌써 소금꽃이 피기 시작했다. 수심 약 15~20㎝의 소금 농도 짙은 바닷물 위에, 마치 초겨울에 얼음이 서서히 얼듯 소금이 뭉치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담가 만져봤더니 누룽지튀김 같았다. 결정지에 담긴 바닷물은 소금 농도가 25%에 이를 뿐 아니라 마그네슘, 칼슘 등 미네랄 성분이 풍부해 미끌미끌했다.

천일염 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게 토판염이다. 결정지에서 소금 결정을 얻는 효율을 높이고 흰색의 소금을 얻기 위해 바닥에 장판을 깐다. 토판염은 장판을 깔지 않고 갯벌 바닥에서 소금을 긁어모은다. 색이 거무튀튀하고 갯벌의 미네랄 성분도 훨씬 많이 들어 있다. 토판염 결정지 옆에서 무릎을 꿇고 물냄새를 맡았다. 코가 살짝 물에 닿는다. 짭쪼름한 소금냄새 밑으로 해초냄새와 흙냄새가 뚫고 올라왔다. 정구술 차장은 쉴 새 없이 체험장을 방문해 소금에 대해 묻는 관광객들에게 천일염의 우수성을 설명하느라 바쁘다. “소금 조금 먹어봐도 됩니까?” “아, 그럼요. 씹지 마시고 가만히 혀에 올려놓으십시오. 단맛이 느껴지실 겁니다.”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태평염전

비몰이는 누가 할까

오후 4시부터 뙤약볕을 뚫고 6명의 소금장인들이 물 위에 알알이 맺힌 소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칸마다 쌓아올린 소금을 손수레에 싣고 염전 바로 앞에 있는 소금 창고로 옮겼다. 간수가 안 빠진 소금은 기계염만큼 쓰다. 6개월 정도 소금 창고에서 간수가 빠지고 나면 다시 저장 창고로 옮겨져 숙성과정을 거친다. 천혜의 태양과 바람이 있는데 소금장인이 하는 일이 과연 뭘까? 습도를 보고 증발지의 수위를 조절하는 일, 무엇보다 비가 올 때 재빨리 증발지 물을 함수 창고(일종의 바닷물 창고)로 옮기는 ‘비몰이’ 등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소금 맛을 좌우하는 일을 한다고 정 차장이 설명했다. 체계화된 지식보다 경험과 본능이 중요할 것 같았다. 태평염전의 천일염은 햇빛과 바람, 그리고 햇빛과 바람을 닮은 장인들이 만들고 있었다.

증도=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ㆍ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다양한 소금의 종류

⊙ 암염 | 예전에 바다였던 곳이 지각변동에 의해 육지로 변한 뒤 물은 마르고 소금만 남아 돌처럼 굳은 것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생산량이 가장 많아 미국, 유럽, 중국 등에서 식용으로 쓴다.

⊙ 천일염 | 바닷물을 햇빛과 바람으로 증발시켜 만든 소금이다. 생산지의 환경과 만드는 방법에 따라 성분과 맛이 다르다. 전세계 소금 생산량의 37%가 오스트레일리아(호주)와 멕시코 등 대규모 천일염 염전에서 만들어진다. 우리나라 갯벌 천일염과 달리 미네랄이 거의 없고 염화나트륨이 98~99%다.

⊙ 재제염 | 천일염을 물에 녹여 한 번 씻어낸 뒤 재결정을 만든 소금으로 꽃소금이라 한다.

⊙ 정제염 | 이온교환수지라는 장치로 바닷물에서 염화나트륨을 분리해 만든다. 일본에서 개발했다. 미네랄이 거의 없어 염화나트륨 함량이 99% 이상이다.

⊙ 호수염 | 바다였던 땅이 호수로 변한 뒤 그 안에 갇힌 바닷물이 증발해 만들어진 소금.

⊙ 함수정염 | 소금기가 녹아 있는 지하수를 증발시켜 만든 소금이다.

⊙ 자염 | 바닷물을 끓여 만든 소금.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행하던 소금 채취법이다.

증도에는 볼거리도 많구나
증도에는 볼거리도 많구나

증도의 태평염전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염전 외에도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 소금박물관: 1945년 태평염전 설립 초기의 석조 소금창고를 박물관으로 바꿨다. 근대문화유산으로 문화재청에 등록됐다. 아담하지만, 자료와 볼거리가 알차다.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매주 월요일 휴관. (061)275-0829.

◎ 염전 체험: 염전을 직접 방문해 둘러보고 천일염을 채취한다. 3월 중순~10월 중순 운영한다. 체험 비용은 어른 3000원, 청소년·어린이 2000원이다. (061)275-0370.

◎ 볼거리: 우전 해수욕장이 유명하다. 근처에 엘도라도 리조트가 있어 여름휴가철에 붐빈다. 문의 신안군청 (061)240-8000.

소금 박물관

■ 8월 7일 바로잡습니다

‘천일염, 식탁의 빛과 소금’ 기사에서 태평염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아니라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입니다. 기자의 착오로 잘못 보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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