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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인제에 있는 아침가리의 옛 인도. 아침가리는 아침에 잠시 밭을 갈 정도의 해만 비치고 금세 져버릴 만큼 첩첩산중이라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숨겨진 깊이만큼 여태도 봄이면 이름 모를 야생화 천국이 되고 여름이면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시원한 피서지가 되어주는 곳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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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2.0]
행복호르몬 세로토닌 활성화…우울증 예방·치료
산소·음이온 도심보다 높아 암예방 효과 탁월
여름 오전 10시·오후 2시께가 피톤치드 최고
스트레스 관련 질환이 해마다 큰 폭으로 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내놓은 통계를 보면 지난해 스트레스 관련 환자 수가 10만명을 넘어섰다. 성별로는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많고, 연령별로는 40~50대가 전체의 40% 가까이 된다. 좀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50대 여성이 스트레스 질환에 가장 많이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의료계에서 스트레스 질환의 증가를 우려하는 것은 스트레스가 몸에 미치는 영향이 전방위적이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은 이제 상식처럼 돼버렸다.
지인들 사이에 꽃순이란 별명으로 더 잘 통하는 장영춘(53·경기 수원 팔달)씨도 스트레스 노출 정도가 심한 50대 초반의 여성이다. 하지만 그는 ‘스트레스 같은 건 모르고 산다’고 말한다. 꽃순이가 스트레스에서 자유롭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면 숲으로 가라고 외친다. 왜 그가 숲으로 가라고 하는지 들어보자.
잿빛 도시인들, 푸른공기에 ‘꽃순이’ 되다
“우리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거니?”
꽃순이는 숲길을 걸으며 친구들과 함께 깔깔깔 웃는다. 그의 웃음은 마치 20대처럼 싱그럽고 맑다. 그가 이렇게 행복감을 느끼기 시작한 건 숲길을 걷고 나서부터다. 53살, 1남1녀의 엄마, 한 남자의 아내로서 평범한 생활을 해왔던 그였다. 집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고, 꽃 가꾸기와 뜨개질 정도가 취미였다. 집에서 할 일 없으면 누워서 텔레비전을 봤다. 아이들도 출가할 나이가 돼 이젠 더는 그의 손길이 필요치 않았다. 날마다 똑같은 하루하루. 즐거운 일은 없고, 괜스레 짜증만 늘어갔다. 속은 더부룩하고, 변비는 늘 있는 일이었다. 나이가 들어 체력이 약해지다 보니 조금만 걸어도 피곤했다.
그런 그에게 다시 활력을 안겨 준 것은 다름 아닌 숲이다. 지난해 초 장씨는 친구 소개로 인터넷 걷기 동호회 ‘세상 걷기’에 가입했다. 수도권에 있는 숲길을 찾아다니며 걷는 모임이다. 회원들은 2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했다. 그는 화요일 낮 모임에 참석했다.
“등산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하잖아요. 체력도 안 좋고 무릎 관절도 안 좋은 저로선 엄두가 나지 않더군요. 숲길은 쉬엄쉬엄 걸으면 되니까 부담이 없었어요. 숲길은 자연 그대로인데다 덥지도 않아요. 공원길은 너무 인위적이고요.” 숲 예찬론이 끝없이 이어진다. 숲을 걸으며 그의 몸에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다. 속이 더부룩한 증세와 변비가 말끔히 사라진 것. 몸이 약해 운동을 싫어하던 그였지만 이젠 4시간 이상 15㎞ 정도를 걷는 것은 식은 죽 먹기가 됐다. 입맛도 좋아져 뭐든지 잘 먹고 잘 소화시킨다. 생활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집안일 외에는 도통 관심이 없던 그가 숲에서 나무, 야생화 등을 보면서 자연스레 꽃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는 숲에서 본 꽃 이름이 궁금하면 식물도감을 뒤적여서라도 알아낸다. 그래서 동호회 닉네임도 꽃순이라 지었다. 꽃순이는 “사는 게 참 재밌어요. 성격도 이전보다 밝아졌구요. 즐겁고 행복해요”라며 웃는다. 숲이 가까이 있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의 직무 만족도가 숲이 없는 지역 직장인들보다 높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도대체 숲의 무엇이 사람들한테 이런 놀라운 효과들을 선물해주는 것일까? 우리가 행복감을 느낄 때 나오는 호르몬 중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이 있다. 세로토닌은 사랑과 행복의 감정에 젖어, 기분 좋고 활기차게 생활하게 만든다. 이 물질은 뇌에서 만들어지는 신경 전달물질이다. 이 물질이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으면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 신원섭 충북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세로토닌은 햇볕이 좋은 한낮에 많이 생성되며, 규칙적인 운동과 긍정적인 사고는 세로토닌의 분비를 돕는다”며 “숲을 꾸준히 이용하면 세로토닌의 증가에 도움이 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숲에선 강한 직사광선이 아니라 간접적인 햇볕을 충분히 쐴 수 있고, 숲길을 걸으며 자연스럽게 운동을 하기 때문이다. 숲 속의 나무들이 뿜어내는 ‘피톤치드’도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톡톡히 한몫한다. 충북대 수의대가 전기자극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실험용 쥐들에 소나무, 잣나무, 편백나무, 화백나무에서 추출한 피톤치드를 주입한 뒤 스트레스 물질인 코르티솔의 농도 변화를 조사한 결과 모든 쥐의 코르티솔 농도가 20~53% 낮아졌다고 한다. 피톤치드는 또 살균효과가 있어 리스테리아균, 레지오넬라균, 황색포도상구균 등의 식중독균을 죽이는 효과까지 있다. 숲에는 또 식물들이 호흡하면서 쏟아내는 신선한 산소가 가득하다. 김용수 대한암한의학회 이사는 “풍부한 산소를 공급받은 세포는 암 덩어리가 될 수 없다”며 “산소는 암 환자를 치유하는 치료제이며, 일반인들에게는 암 예방제”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도심 공기의 산소 농도는 약 20.9%다. 실내나 지하실은 이보다 훨씬 적은 18~19%다. 숲은 도심 공기보다 1~2%포인트 더 많은 산소를 함유하고 있다. 식물들이 광합성 작용을 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음이온은 두통을 없애주고,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자유히스타민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숲 속에 존재하는 음이온 양은 1㎥당 800~2000개로, 도시의 실내보다 14~70배 많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숲에는 또 대기오염 물질을 토해내는 빌딩과 공장들이 없으니 공기의 질에서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녹음이 짙은 여름은 사계절 가운데 숲에서 피톤치드 발산량이 가장 많은 계절이다. 여름에 숲을 가면 좋은 이유다. 하루 중에서는 오전 10시께 또는 오후 2시께가 피톤치드 발산량이 가장 많은 시간대다. 스트레스에 지친 사람들이여, 여름이 다 가기 전에 숲 냄새를 한번 맡아보는 건 어떨까?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중독도 고치는 숲의 마법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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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짐 벗는 숲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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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숲에 가고 싶다 남효창 숲연구소 소장은 일반인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숲으로 휴양림을 꼽았다. 다음은 남 소장이 여름철 가족 단위로 가볼 만한 숲으로 추천한 곳이다. ● 경기도 가평 산음자연휴양림 시원한 계곡과 자연에 가까운 숲길. 다양한 활엽수들이 즐비하고, 바닥에는 이끼와 고사리 및 음지성식물들이 많다. 딱따구리 같은 새들도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다. ● 강원도 가리왕산 휴양림 서울에서 좀 멀긴 하지만, 여름철 피서지로 가볼 만하다. 어느 곳보다 편안하게 숲을 걸을 수 있다. 특히 물이 풍부한 것이 장점. 무엇보다도 각종 산야초들이 많이 자라며, 계곡이 많다. ● 제주도 비자림 비자림엔 수령 500년이 넘는 고목 수백 그루가 있다. 여름철 제주도관광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방문해볼 만하다. 비자나무는 바둑판 재료로 쓰인다. 열매는 구충약용으로 많이 심었던 나무다. ● 강원도 청태산 자연휴양림 키가 큰 잣나무숲이 하늘을 뒤덮어 시원한 여름을 만들어준다. 숲 속에는 노루, 토끼 등 야생동식물이 고루 서식하고 있어 자연박물관을 찾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 오대산 월정사 주변 피톤치드를 많이 발산하는 전나무숲이 우거져 있다. 숲 바닥에서 위쪽을 관찰해보면 놀라운 숲의 모습을 접하게 된다. 1년짜리에서부터 100년이 넘은 것까지 다양한 나무들이 숲을 역동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양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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