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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8.19 21:12 수정 : 2009.08.22 12:23

야외공연이 벌어지는 로열 광장.

[매거진 esc]
캐나다 유일의 불어권 문화도시 퀘벡…축제 분위기 넘치는 여름밤 잊지 못할 풍경

1967년 12월24일. 프랑스 중부의 소도시 몽트리샤르에 에프비아이(FBI) 요원 칼 핸러티(톰 행크스)가 도착한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인쇄소에서 위조수표를 찍어대고 있는 희대의 사기꾼, 프랭크 애버그네일(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칼은 마침내 프랭크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는 데 성공한다.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한 장면이다. 근데 이 장면은 프랑스 현지에서 촬영된 게 아니다. 스필버그는 어디서 이 마을을 촬영한 것일까? 정답은 캐나다의 퀘벡이다. 할리우드에서 유럽까지 날아가지 않아도 프랑스보다 더 프랑스다운 풍광을 찍을 수 있는 곳.

〈태양의 서커스〉 공연.

갈아타고 갈아타고 16시간 걸려 도착

한국에서 퀘벡까지 가는 길은 정말 멀었다. 인천공항에서 밴쿠버공항으로, 이어서 몬트리올공항으로, 퀘벡공항으로. 오후 4시 즈음 한국 국경을 넘은 나는 자정에 이르러서야 서경 71도, 퀘벡시의 숙소에 도착했다. 비행기 좌석에 앉아 16시간이 넘게 잠을 잔 탓에 잠이 오지 않을 듯했지만, 해 지기도 전에 가게 문을 닫아버리는 퀘벡에선 자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다행히 이불과 베개가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본 뭉게구름처럼 폭신했다. 그래서 난 곧 잠이 들어버렸다.

북위 43도. 해도 참 빨리 뜬다. 일찌감치 아침 식사를 하고 방으로 올라왔다. 창밖을 내다보니 온타리오호에서 뻗어 나온 세인트로렌스 강이 반짝이며 대서양을 향해 흘러가고, 호텔에서 빠져나온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올드 퀘벡을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퀘벡시는 크게 아랫마을과 윗마을로 나뉜다. 세인트로렌스 강과 접한 언덕 아래 아랫마을(Lower Town)과 언덕 위의 윗마을(Upper Town). 윗마을은 다시 4㎞에 이르는 옛 성벽을 경계로 새 동네와 옛 동네로 구분되는데, 윗마을의 옛 동네와 아랫마을을 합해 올드 퀘벡(Old Quebec)이라 한다.

아랫마을의 노트르담 대성당 앞은 ‘퀘벡 서머 페스티벌’을 즐기기 위해 전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들로 붐볐다. 거리의 악사는 바이올린으로 프랑스 민요를 흥겹게 연주하고, 멈춰 선 사람들은 어깨춤을 추고 발을 구르며 장단을 맞춘다. 샹플랭 거리의 아기자기한 레스토랑, 부티크, 화랑들과 로열 광장의 고풍스런 건물들. 흠, 참 아름다운 마을이군. 아닌 게 아니라 유네스코는 올드 퀘벡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로열 광장에는 한쪽 벽 전체가 벽화로 뒤덮인 5층 건물이 있다. 벽화 앞에서 너도나도 사진을 찍는데 벽화는 퀘벡의 역사, 인물, 사계, 문화를 담고 있다고 한다. 1535년 프랑스인으로선 처음 퀘벡에 도착한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 1608년 퀘벡에 모피교역소를 건립하고 도시를 세워 ‘뉴 프랑스’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 사뮈엘 드 샹플랭 등 퀘벡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창문과 발코니마다 모습을 드러낸다. 어, 근데 셀린 디옹이 안 보이는구나. 5살 때부터 샹송 가수로 활동, 많은 이들이 프랑스인으로 착각하지만 셀린 디옹은 퀘벡인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퀘벡 출신 뮤지션. 벽화 속 아이들이 캐나다인의 종교라 일컬어지는 아이스하키 스틱을 휘두르는데 퍽이 날아올 것 같다.

세인트로렌스 강변에 자리잡은 퀘벡시 전경.

아랫마을에서 언덕 위의 윗마을로 올라가는 방법으로는 계단 길과 비탈길, 케이블카로 가는 방법이 있다. 언덕 위로 올라서면 퀘벡시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은 샤토 프롱트나크 호텔이 600개가 넘는 객실을 품고 위용을 자랑한다. 2차 대전 당시 처칠과 루스벨트 그리고 연합군 사령관들이 이 호텔에서 머리를 맞대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수립했다고 하는데, 초록빛 지붕이며 외관이 무척 낯익다. 정선의 강원랜드 호텔이 벤치마킹했다고 한다. 호텔 앞 다름 광장에서도 흥겨운 거리공연이 벌어지고, 노천카페에 앉아 한가롭게 커피를 마시거나 신문을 보는 사람들. 흠, 정말 프랑스가 따로 없군! 트레조르 거리엔 이젤을 세워놓은 화가들이 자신만의 화풍으로 초상화를 그려주는데 나는 마이클 잭슨 초상화만 줄창 그려대고 있는 한 친구의 작품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건 정말 예술이군요!’가 아니라 ‘마이클 잭슨을 그리긴 했지만 이건 도무지 마이클 잭슨이 아니잖아요.’ 꼬불꼬불 이마 위로 내려오는 머리칼을 제외하면 미스터 빈을 그려놓았다고 해도 모를 초상화였다. 이렇게 그려도 그림 값을 받을 수 있다면 나라도 당장 화가로 나설 수 있겠군. ‘자, 이명박을 그려놓은 것 같지만 이 초상화는 가발 쓴 전두환이랍니다.’


나는 그 화가 덕분에 캐나다인은 무척 관대한 사람들일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실제 캐나다는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뒤섞인 국가지만 별다른 사고 없이 인류의 역사를 항해하고 있지 않은가. 캐나다 20달러 지폐를 들여다보면 원주민을 중심으로 여러 동물들이 물고 물리며 뒤엉켜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자국의 지폐에 담기엔 너무 난폭한 그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두가 한 배를 타고, 함께 노를 젓고 있다는 것. 밉든 곱든 다같이 영차영차! 이것이 캐나다라고 단 한 장면으로 보여준다.

1760년 영국군이 지은 퀘벡 성벽. 방문객들은 4㎞에 이르는 성벽 위를 따라 산책할 수 있다.

에이엠엘(AML)의 크루즈를 타고 세인트로렌스 강 위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대서양 연안 세인트로렌스 만에서 70㎞에 이르던 강폭이 1㎞ 이하로 좁아지는 ‘퀘벡’은 아메리카 원주민 말로 ‘강이 좁아지는 곳’. 프랑스를 떠나 대서양을 건넌 뒤 아메리카 내륙으로 들어오던 자크 카르티에도 이 길을 지나갔겠지. 크루즈는 항구에서 20여㎞를 내려와 사과와 사이다(원래는 사과를 발효시켜 만든 술을 가리키는 말인데 우리나라에선 탄산음료의 대명사로 둔갑했다) 산지로 유명한 오를레앙 섬을 지나며 유턴을 하더니 몽모랑시 폭포를 끼고 지나간다. 비록 <업>에 등장하는 파라다이스 폭포만큼은 아니지만 나이아가라 폭포의 1.5배, 83m에 이를 정도니 멀리서 바라봐도 장관이다.

해는 여전히 쨍쨍, 크루즈에서 내려 퀘벡 문명박물관으로 향했다. 캐나다 이민의 역사가 고이 간직되어 있는 곳. 나는 박물관에 들어가면 늘 하는 의식대로 첫번째 유물을 들여다보며 환청이 들릴 때까지 기다렸다. 이물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 갈매기 울음소리, 항해사의 외침 소리, 황금을 찾아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를 찾아온 사람들. 불행인지 다행인지 황금으로 가득한 장소를 알고 있다는 원주민 추장을 만났다지. 그래서 추장을 본국으로 납치해 갔는데, 알고 보니 그가 말한 휘황찬란한 보물이 숨겨져 있는 장소는 땅속이 아니라 하늘이었다던가. 밤하늘의 오로라 말이다.

강원랜드가 흉내 낸 고풍스러운 호텔

퀘벡의 랜드마크, 샤토 프롱트나크 호텔.

퀘벡의 여름밤은 온통 축제 분위기, 곳곳에서 행위예술가와 뮤지션의 거리공연이 벌어진다. 오늘은 마침 ‘퀘벡 서머 페스티벌’을 축하하기 위한 서커스, ‘보이지 않는 길들’(The Invisible Paths)이 처음 무대에 올라가는 날. 텔레비전 드라마 <태양을 삼켜라>로 인해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바로 그 ‘태양의 서커스’사가 특별히 기획, 제작한 서커스다. 2013년까지 ‘퀘벡 서머 페스티벌’에서 만날 수 있다는데, 무엇보다 획기적인 건 무료 야외공연이란 점. 공연이 열릴 장소로 이동했다.

고가도로 교각 아래 서커스가 시작될 무대 주위는 군중들로 가득했다. 근데 좌석도 없고, 무대 세트라는 게 고작 고가도로에서 널어뜨려 놓은 천 조각이 전부라고 할 정도. 사람들을 이렇게 모아놓고선 뭘 하자는 수작이야! 투덜대는데 음산하고 장중한 음악과 함께 무대 위로 얼굴 없는 수도사들이 가면을 들고 등장했다. 기이한 장면이구나. 얼굴 없는 그들이 손에 쥐고 있던 가면을 관객들에게 내밀며 다가왔다. 내 야구모자를 벗겨 가면에 씌우기도 하고, 해괴한 소리를 내며 사람들의 동작을 거울처럼 따라 하기도 했다. 공연은 밤거리를 지나온 세 개의 퍼레이드가 도착하면서 점점 달아올랐다. 빨강, 하양, 파랑 의상을 입은 요정들이 제각각 환상적인 조명과 신비한 음악에 맞춰 현란한 묘기를 펼치자 관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드디어 그들이 무대 위에 오르고 고가도로에서 내려온 천은 스크린이 되어 퀘벡의 밤하늘을 ‘물’과 ‘불’과 ‘숲’이 어우러진 풍경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때부터 나의 벌어진 입은 도무지 닫히지 않았다.

공연을 보다 무심코 고개를 돌리는데 아빠의 목말을 타고 손뼉을 치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의 눈동자는 호기심과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깨에 문신을 한 청년, 코에 피어싱을 한 소녀, 수염 덥수룩한 아저씨, 돋보기를 쓴 할머니. 남녀노소 빈부귀천 가리지 않고 모든 이들이 어린아이의 눈망울을 한 채 공연을 보고 있었다.

퀘벡 서머 페스티벌의 꽃, 뮤직콘서트.

태양의 서커스 거리공연에 입이 안 다물어져

문득 <호밀밭의 파수꾼>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뉴욕에서 타락한 어른들의 세계를 엿보다가 서부로 떠나려던 홀든과 키보다 큰 가방을 끌고 따라가겠다며 나선 피비. 여동생을 달래기 위해 ‘회전목마’를 태우고 벤치에 앉아 소낙비를 맞으며 누이를 바라보다 홀든이 깨닫던 장면. 나는 아이의 눈망울을 한 군중들 속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어 아이들이 절벽에서 추락하지 않도록 보호하며 살고 싶다던 홀든의 소망을 떠올렸다. 그러다 나는 갑작스레 뭉클해졌다. 그래서 눈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길들’의 끝을 알리는 거대한 박수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마치 어둠 속의 외침처럼. 세상은 이래야 해, 세상은 이래야 하는 거야.

야외공연이 벌어지고 있는 다름 광장.

퀘벡 여행 쪽지

사이다의 본래 의미는?

현재 퀘벡으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가장 간편한 방법은 8월 중순부터 대한항공이 매일 운항중인 인천~토론토 직항편(13시간 소요)을 이용한 후 토론토~퀘벡(1시간 30분 소요) 항공편으로 갈아타는 방법이다. 아니면 밴쿠버~몬트리올~퀘벡 순으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한다. 토론토나 몬트리올에서 내려 퀘벡행 기차로 갈아탈 수도 있으나 토론토에서는 10시간, 몬트리올에서는 3시간30분가량 걸린다.

◎ 시타델 | 1750년 프랑스군이 만들기 시작해서 1831년 영국군이 완성한 별 모양의 요새. 올드 퀘벡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이곳은 미국의 공격으로부터 퀘벡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는데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지진 않았다. 캐나다에서 유일하게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제22연대의 본부가 있으며 현재 공원으로 이용한다. 진홍색 상의와 푸른 바지를 입은 병사들의 위병 교대식을 구경할 수 있다.

◎ 몽모랑시 폭포 | 퀘벡시에서 동쪽으로 7㎞ 떨어진 몽모랑시 폭포는 몽모랑시 강이 세인트로렌스 강으로 떨어지면서 생겼다. 프랑스 탐험가 사뮈엘 드 샹플랭이 자신의 후원자이자 뉴프랑스 총독이 된 몽모랑시 공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일대는 ‘몽모랑시 폭포 공원’으로 지정되어 소풍 장소로 쓰인다. 폭포를 구경하는 방법은 폭포 밑에서 올려다보는 방법, 케이블카를 타고 조망하는 방법, 그리고 폭포 위의 철교를 건너며 내려다볼 수도 있다. 높이 83m. 용소 깊이 17m.

◎ 오를레앙 섬 | 세인트로렌스 강 한가운데 섬. 길이 35㎞, 폭 8㎞의 작은 섬으로 육지와 이어지는 다리는 단 하나. 17세기 북프랑스 출신 농민들이 건너와 개척한 곳인데, 당시에 지은 집, 교회, 제분소 등 옛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퀘벡시가 프랑스 옛 도시의 향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면 이곳은 프랑스 옛 시골의 향취를 느낄 수 있는 곳. 사과와 딸기를 비롯한 각종 과일의 산지로 유명하며, 메이플 시럽과 사과를 발효시켜 만든 술, 사이다(Cider)를 현지에서 살 수 있다. 2003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중 하나로 선정됐다.

퀘벡시 관광정보 사이트

퀘벡시관광청(Quebec City Tourism) | www.quebecregion.com
퀘벡서머페스티벌(Quebec City International Summer Festival) | www.infofestival.com

퀘벡=글 노동효/여행작가, <로드 페로몬에 홀리다> 저자·사진 퀘벡시관광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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