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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9.09 19:26 수정 : 2009.09.09 19:27

굿바이 속물근성

[매거진 esc] 나의 첫 와인 마주앙 사연 공모전





몇 년 전, 샤토 어쩌고 키안티 어쩌고 하던 와인 정보를 조금씩 알아가던 때였다.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는 이른바 산악인이었다. 나도 산을 좋아했기 때문에 만나면 산에 대한 대화가 무르익었고 우리는 추운 11월이었지만 지리산 1박2일 산행을 갔다. 저녁 세석산장에 도착해, 가져온 옷을 모두 껴입고 저녁을 먹을 준비를 했다. 그때 남친이 나를 보고 웃으며 “내가 뭘 가져왔는지 알아?” 하며 와인 한 병을 내려놓았다. ‘마주앙 리슬링’이었다. 생산지는 한국 경산. 그때 나의 표정은 실망으로 가득했다. 프랑스산도 아니고, 이태리산도 아닌 한국 경산이라는 생산지가 나를 실망시켰던 것이다.

나의 표정을 살피던 남친은 “와인 좋아한다고 해서… 편의점에서 샀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작은 목소리로 “좋아는 하지”라고 말했다. 내가 실망한 것을 눈치챈 남친은 “좀더 비싼 걸 사올걸 그랬나? 그래도 이게 가장 라벨이 이쁘던데” 하면서 헤헤 웃었다. 그 한마디에 나를 속물 취급하는 건가 내심 화가 났다. 남친은 묵묵히 밥과 김치찌개에 돼지고기 고추장볶음까지 내놓았다. 그리고 와인 따개를 미처 준비하지 못해 코르크 마개를 병 속으로 밀어넣어 버렸다. 그러는 내내 미소를 지으며 내 기분이 좋아지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남친은 와인을 컵에 따라 내 손에 쥐여주었다. 우리는 건배를 했다. 그리고 입에 한 모금 머금었다. 이렇게 시원하고 상큼한 화이트 와인이 있을 수 있다니! 산 중턱 영하의 기온에 마신 마주앙 화이트는 추위에 떨며 앉아 있는 나를 감격시켰다. 하루의 등반으로 노곤했던 몸 구석구석까지 퍼진 와인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청량했다.

등산을 다녀오고 난 후, 나는 남친에게 사과했다. 그때 솔직히 실망이었다고. 그러나 당신 덕에 와인의 화려한 이미지만을 좇던 나의 속물근성을 걷어낼 수 있었다고. 쑥스러워 말로 못 하고 이메일로 보냈지만 말이다.

오명희/서울 마포구 동교동

※ ‘나의 첫 와인 마주앙 사연 공모전’은 이번 주로 연재를 끝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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