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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9.23 20:47 수정 : 2009.09.23 20:47

랑그도크루시용 지역의 드넓은 포도밭. 광활한 면적만큼이나 와인 생산자들의 시름도 크고 깊다.

[매거진 esc] 노중훈의 여행지 소문과 진실

먼저 퀴즈부터 풀어보자. 세계 최대의 와인 생산 국가는 어디일까. 프랑스? 아니다. 정답은 이탈리아다. 세계 총생산량의 18%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출 물량도 1위다. 그럼, 프랑스 최대의 와인 생산 지역은 어디일까. 보르도? 부르고뉴? 둘 다 아니다. 정답은 랑그도크루시용(Languedoc-Roussillon)이다. 프랑스 와인 생산량의 약 3분의 1을 담당한다. 1년 중 해가 비치는 날이 300일에 이를 정도로 일조량이 풍부한 까닭이다.

랑그도크루시용 주는 프랑스 중남부에 자리한다. 주도는 몽펠리에. 대표적인 관광지는 카르카손 성이다. 수도인 파리, 그리고 노르망디의 아이콘인 몽생미셸과 더불어 가장 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연간 방문객 수만 300만~400만명.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성에는 무려 52개의 탑이 있다. 가까이에서 세밀하게 살펴본 성과 자리를 한참이나 뒤로 물려 바라본 성의 실루엣은 용호상박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특히 해거름이 시작될 무렵 카르카손 성이 주변의 밀밭과 어울린 모습은 보는 이를 황홀경으로 몰아간다.

다시 와인 이야기. 랑그도크루시용은 와인 생산량에 있어서는 최고지만 품질만을 놓고 따지자면 상황은 달라진다. 30여년 전만 해도 이 지역 와인은 푸대접을 받았다. 저렴한 가격만큼이나 맛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싸구려 테이블 와인이 대종을 이뤘다. 지금은 사정이 크게 바뀌었다. 프랑스에서도 가장 개성적이고 가격 대비 우수한 와인을 선보이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낮은 등급의 와인을 생산하다 보니 프랑스 특유의 엄격한 와인 제조 법령에서 다소나마 자유로울 수 있었고, 이것이 다양한 품종 실험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지역 와인들은 대부분 몇 가지 품종을 혼합해서 만드는데 카리냥, 생소, 그르나슈 등 우리에게는 낯선 품종들이 주로 사용된다.

그런데 오늘날 프랑스 와인 산업은 큰 위기를 맞고 있다. 몇 가지 이유가 꼽힌다. 우선 와인 소비량이 현저하게 감소했다. 유명 와인 비평가인 오즈 클라크가 쓴 <오즈의 프랑스 와인 어드벤처>라는 책에 따르면 1950년대에는 프랑스 사람 한 명이 연간 170ℓ의 와인을 마셨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2002년에 56ℓ로 눈에 띄게 줄었다. 현재 소비량은 더 떨어져 50ℓ 정도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을 비롯한 이른바 신세계 와인의 약진도 와인 종가의 입지를 크게 약화시켰다. 저렴한 수입 와인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프랑스 와인 농가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수익을 내기는커녕 대출이자 갚기에도 급급한 형편이다. 최대 생산지인 랑그도크루시용은 상황이 더 심각할 수밖에 없다. 포도밭을 떠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농가와 와인 제조업자들은 정부의 지원책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가 않다. 프랑스 정부가 2007년 공급 과잉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포도 재배 면적을 줄이는 유럽연합(EU)의 와인 산업 개혁안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만 이미 11만㏊의 포도밭이 사라진 상태다. 랑그도크루시용의 곳곳을 다니면서 마신 와인들은 한결같이 미각의 즐거움을 선사했지만, 그 뒤에는 농부들의 근심과 한숨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노중훈 여행 칼럼니스트 superwin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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