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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향기농장 김영환 대표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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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너는 내운명 가을향기농장 김영환 대표의 항아리
가을향기농장의 김영환(52·사진) 대표는 처음 봤을 때 초식남 같았다. 느릿한 중저음과 입가에 옅게 사라지지 않는 미소가 유기농 된장을 만드는 손과 잘 어울린다. 그러나 ‘초식남’이 ‘환경에 순응한다’는 뜻이라면, 그는 초식남이 아니다. 그가 정말 이런 의미의 초식남이라면, 1997년 처음 귀농해 거둔 첫 수확물인 쌀 몇 섬과 고추 약간 등 250만원어치의 농작물을 다 버리고 도로 서울로 갔을 게다. 초식동물은 새끼가 공격받으면 사자와도 싸운다. 그는 ‘농사에 무지한 현실’과 싸웠다. 가족을 위해. “1997년에 귀농했는데, 처음 내려와서는 ‘흙하고만 살겠다’고 했는데, 농사를 지어 보니 굉장히 사치한 마음이더라고요. 가족들을 책임져야 하는데…. 첫해 귀농해서 얻은 게 쌀하고 고추 조금하고 돈으로 250만원이었어요. 과연 그거 가지고 가족들을 먹여살릴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쌀은 친척들한테 부탁해서 팔고, 콩은 도매상들이 한 가마에 16만원에 팔라고 해 도저히 아까워서 못 팔겠더라고요. 그런데 어느 날 옆집 할머니가 메주 만들어 판다기에 물어보니 값이 콩값의 두배더라고요. ‘이거다’라고 생각했죠. 근데 정작 메주를 만들었는데 못 팔았아요. 장날 가봤더니 할머니들만 쭉 앉아 있어요. 그때 집사람은 서른여덟이고 저는 마흔인데 도저히 못 팔겠더라고.” 오도카니 앉아 있다 돌아왔다. 어머니 친구분과 메주를 나눠 장을 담갔다. 장에 무지한 김 대표에게 어머니 친구분은 교사가 돼 줬다. 몇 달 뒤 어머니 친구는 수십년 동안 장을 담갔던 자신이 인천에서 담근 장보다 양평에서 김 대표가 담근 장이 더 맛있다는 말을 했다. 그렇게 장과의 인연은 시작됐다. 초식동물은 오래 씹고 오래 소화한다. 김 대표도 몇 번의 실패 끝에 그걸 배웠다. “2003년인가 유기농 유통단체에서 메주를 만들어 달라고 제안했죠. 400말 가까이요. ‘메주가 쉽게 돈이 되는구나’라고 생각했죠. 근데 다 망가졌어요. 메주 만든 게 아주 잘못됐죠. 당연하죠. 2평짜리 사랑방에서 겁 없이 메주 400말을 띄웠고 가마솥은 마당에 대충 걸어놓고 만들었으니. 유혹에 넘어갔던 거죠.” 제대로 된 황토방을 짓고, 제대로 손품을 팔아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했다. 그의 유기농 장류 제품은 초록마을과 생협에 공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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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향기농장 김영환 대표의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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